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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함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주는 아쉬움 또는 슬픔

by 한선생

A군과 B군은 사귄지 얼마 안 되는 연인이다. 매일매일이 설레는 나날들이었다. A군은 B군이 첫 여자친구였기에 다른 연인들이 한다는 행동들은 다 해보고 싶었다. 손잡고 거리를 거닐고, 같이 영화를 보고, 마주 보고 앉아 밥을 먹고.. 어느 날은 데이트를 하다가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더니 B양이 거절하는 게 아닌가. 그렇게까지 A군에게 의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A군은 알겠다고는 했지만 서운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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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함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쉬운 감정이다. 아쉬움이 기대가 충족되지 못할 때 느끼는 일반적인 경우의 감정이라면 서운함은 특히 친밀한 사이의 사람의 행동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또 명확한 일에 대해서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을 때는 실망감과 분노를 느끼지만, 화를 내면서 정색하고 따지기에는 뚜렷한 명분이 없거나 그러고 싶지 않을 때 서운하다는 표현을 쓴다.


서운함 마음에 아쉽거나 섭섭함


생물학적 속성 및 기능

서운함의 내수용감각은 아쉬움 또는 슬픔과 유사하다. 안타깝고 속이 상하며 무력한 느낌이 든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로 신체예산의 혼란이 발생했으나 실망이나 분노처럼 그 에너지가 향할 방향이 명확하지 않아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서운함은 사회적 맥락에서 경험된다. 관계적 맥락의 감정이지만 아무 사이도 아닌 사람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일은 없다. 가족, 친지, 친구, 연인, 배우자 등 친밀한 관계에 있으며 평소에 어느 정도 이상의 기대를 갖고 있을 만한 대상이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했을 때 서운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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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그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그에게 나의 서운함을 표현하여 사과 및 재발 방지의 약속을 받고 손상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끝까지 모르고 넘어갈 수 있으며,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관계가 소원해지게 된다.


*서운함과 섭섭함

서운함의 의미에는 아쉬움과 함께 섭섭함이라는 감정이 포함된다. 섭섭함 역시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충족되지 못했다는 데서 경험되지만 아쉬움보다는 불만과 못마땅함이 강조된다. 즉, 서운함이 실망감의 표현에 가깝다면 섭섭함은 실망감에 더해 약한 수준의 분노가 섞인 감정이다.

15_섭섭남.jpg 섭섭하다에는 느낌표(!)가 붙는 이유

서운함이 상대가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행동을 했지만 상대의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고 또 화를 내고 사과를 요구하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면, 섭섭함은 상대의 행동이 이해도 안 될뿐더러 상대의 잘못이 명백해서 실망감이 더 큰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화를 내기에는 곤란한 상황이거나 그럴 수 없는 관계에서 섭섭함을 경험한다.


*야속함과 고까움

야속(野俗)함 역시 무정한 행동이나 그러한 행동을 한 사람이 섭섭하게 느껴져서 언짢다는 감정을 나타낸다. 서운<섭섭<야속으로 언짢음의 강도가 커지는 느낌이다. 야속한 사람..처럼 그러한 행동을 한 사람을 수식하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섭섭하고 야속하다는 의미의 고까움(고깝다) 역시 그러한 행동을 한 사람에 대한 언짢음을 표현하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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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함의 문화적 맥락

서운함은 대표적인 한국의 문화적 정서로 한국문화의 맥락과 한국인 심리에 기반해서 이해해야 하는 감정이다. 가까운 사이의 상대가 당연히 어떤 일을 해 주리라 기대한 상황에서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대에 대한 실망감 또는 배신감을 느낀다. 이는 어떤 문화의 사람들이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실망이나 배신감으로 인한 분노를 그대로 드러내면 그간 구축해 온 그와의 관계가 흔들리거나 자신에 대한 평판이 떨어질 수 있다. 서운함은 이러한 경우에 자신의 아쉬움과 실망을 표현하면서도 관계의 손상은 방지하는 감정이자 감정표현 방식이다.

20141204173204623.jpeg 미안하다!!!!

한국문화에서 한국인들은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 서운했다는 말을 들으면 미안함 감정이 들면서 사과 및 자신의 잘못을 보상하려는 행동을 하려 한다. 실망감은 해소되고 둘 사이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이다.


한편, 상대에 대한 반복적인 실망 또는 상대의 명백한 부주의는 섭섭함을 야기한다. 섭섭함에는 약한 수준의 분노와 슬픔을 동반한 감정의 표현이 뒤따르며, 비언어적인 분노의 표현(삐침)이 드러나기도 한다. 상대방의 섭섭함을 느꼈다면 역시 사과 및 보상행동이 이어져야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 이 경우의 사과 표현은 서운함보다 좀더 명확하고 커야 한다.


표현/이해의 팁

서운함은 아쉽거나 슬픈 표정으로, 섭섭함은 슬프고 약간 화나 난 표정으로 알 수 있다. 서운함이나 섭섭함이나 말로 직접 표현하기는 구차스럽고, 말로 하기 전에 상대방이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는 감정이므로 비언어적 단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문화에서는 주관적으로 개인이 인식한 관계에서도 서운함(또는 섭섭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말해, 나는 상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상대는 나를 친밀한 관계로 인식하고 뭔가를 기대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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