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노마모족과 기능주의 인류학
세상에는 별의별 문화가 다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해 안 되기로 유명한 문화가 야노마모족의 문화입니다. 야노마모족은 브라질 북부, 베네수엘라 남부의 열대우림지역에 사는 종족인데요. 오지 중의 오지에 살았기 때문에 20세기가 되도록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채로 살아왔습니다.
1960년대 이후로 인류학자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한 이 부족은 사납고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인류학자 나폴레옹 섀그넌에 의해 '만성적 전쟁상태'로 묘사되고 있는 이 부족의 폭력성은 특히 여자를 때리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 참 별 미개한 종족이 다 있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우리의 인류학자들은 이들이 왜 하필 이런 문화를 갖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기능주의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이상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적합한 방식입니다.
기능주의의 관심사는 어떠한 문화적 현상 혹은 요소가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해 어떠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기능주의에는 통합론적 측면과 목적론적 측면이 있는데요. 통합론적 측면은 모든 문화적 요소들은 통합된 전체 안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전체를 유지한다는 관점이고, 목적론적 측면은 문화의 모든 요소들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통합론적 관점이 사회학의 주제와 가깝다면 심리학과의 연관성은 목적론적 관점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여기서 인류학과 심리학의 접점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어떠한 목적을 갖고, 즉 욕구나 동기를 갖고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죠. 기능주의 관점에서 문화의 궁극적 목적은 집단의 생존, 즉 ‘사회의 유지’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야노마모족의 문화를 한번 이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야노마모족의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대단히 폭력적입니다. 때리기만 하는 것은 다행인 편이고 귀에 구멍을 뚫어서 잡아당기거나 칼로 몸 여기저기를 베고 불로 지지기도 합니다...
읽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이런 엽기적인 습속도 수행하는 기능이 있을까요? 여자를 때리는 것이 야노마모족이 생존하는데 도대체 어떤 이익이 될까요?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그 이유를 야노마모 족 남자들의 역할에서 찾았습니다.
야노마모족이 사는 지역은 남아메리카의 열대우림입니다. 나무가 빽빽하고 식물이 무성하여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곳이 아닙니다. 목축을 할 만한 초원도 없고 가축화할 만한 동물도 없습니다.
식량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 지역 원주민들은 전쟁이 잦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이 나면 삶의 터전이 불타고 사람들이 죽거나 잡혀갑니다. 잦은 전쟁에서 되도록 많이 승리하고 적들의 공격에서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 야노마모족의 남자들은 용맹한 전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야노마모족 남자들의 폭력성도 이런 과정을 통해 부족의 구성원들에게 용인받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많은 지역에서 용감한 사람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웃나라 일본이 무사도(武士道)를 강조해 온 것도 화산섬에서 식량부족에 시달린 고대 일본인들이 약탈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겁니다.
덧붙여, 성(性)은 인간의 야수적 본능을 극대화시킵니다. 적절한(?) 성적 보상은 인간을 난폭하고 잔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성 전사들은 여성의 성(性)을 보상으로 거칠고 잔인한 야수성을 유지 및 강화했습니다.
야노마모 족의 여자들에게 부족의 남자들은,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을 지켜주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학대를 받을지언정 다른 종족에게 죽거나 잡혀가서 고통 받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남자들의 잔인한 행동들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이죠.
따라서 야노마모족의 폭력을 현대 여성인권의 관점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어떤 문화의 구성원들은 그 문화의 가치들을 내면화하게 되는데, 야노마모족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는 폭력을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성 인류학자가 야노마모족을 찾았을 때, 야노마모족 여성들은 인류학자의 몸에 멍 하나 상처 하나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며 "당신 남편은 댁을 별로 안 사랑하나보다"고 말했다죠..
이들의 습속을 미개하다고 단정짓고 '남녀는 평등하며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는 가치를 교육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야노마모족 남자들의 폭력성은 잦은 전쟁에서 부족의 안위와 생존을 책임지기 위한 조건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야노마모족 남자들이 착하고 순해진다면 당장 전쟁이 났을 때 이전만큼 사납고 잔인한 전사가 될 수 있을까요? 부족의 여자들과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요?
어떤 문화요소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 문화에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것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거나 필요가 없어지면 자연히 도태되어 없어지겠지요. 이것이 기능주의적 관점입니다.
그런데 문화의 기능에는 그 이유를 금방 SSG보고 알 수 있는 현시적 기능(manifest function)과 겉으로 보기에는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잠재적 기능(latent function) 이 있습니다. 현시적 기능은 문화요소나 현상이 나타나는 표면적인 이유이고 잠재적 기능은 그러한 요소나 현상이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기우제를 예로 들면, 기우제의 현시적 기능은 '비를 내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현시적 기능만 가지고는 그 문화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오는 것은 아닐테니 기우제를 지내는 문화는 무식하다, 미개하다는 오해를 사기 쉽죠.
기우제의 잠재적 기능은 '구성원들의 불안을 낮추고 결속력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가뭄은 큰일 오브 더 큰일입니다. 가뭄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굶어죽을까봐 불안해지고 이는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기우제는 구성원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됩니다. 기우제를 준비하면서 서로의 뜻과 힘을 모으고 또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것이죠.
사실상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기괴하고 엽기적인 문화들은 그것들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 때문에 존재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기능들은 관광객 같은 외부인의 눈으로 SSG 본다고 알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문화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특별한 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