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공학도의 공식이나 경제학도의 분석으로만 접근하면 자가당착에 빠지는 오류를 범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신 철학과 인문학의 토대 위에서 단계별로 접근했을 때 그 내재적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비트코인은 세상에 대해 사고하는 하나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는 비트코인 자체는 하나의 화폐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닉슨의 브레튼우즈 이후 현재의 모든 통화는 정부의 위임과 인가에만 의존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이는 기존 주류경제학이 주창해왔던 인플레이션에 필연성을 부여해주었다. 그러나 몇 번의 금융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늘어나는 부채와 통화량, 감소하는 유통속도, 동일한 통화 및 재정정책으로 양극화가 매우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헷지의 역할로 등장했다고도 볼 수 있다. 기존의 금과 같이 특정 상품과 연결되지는 않지만 원래 화폐 자체는 장부상에 존재하되 무가치하여야 하고, 변제의 최종성을 가지며,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으면 된다. 그것이 피앗머니의 시작이었으나 중앙화된 누군가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오류가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렸고, 마침내 그 대안으로서 비트코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비트코인은 트랜잭션으로 장부가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유일하며, 개인에게 소유권을 부여한다. 즉, 비트코인은 장부이고, 화폐는 장부일 뿐이다.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공급의 제한과 채굴의 난이도로 이루어진 비트코인은 닫힌계이며, 이것이 작동하는 방식은 신뢰에 기반한 작업증명으로 탈중앙화가 가능하고 유비쿼터스 시대의 그 가능성은 열린계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기술은 새로운 행성의 대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새로운 대지 위에 인류는 새로운 생태계를 쌓아갈 것이고, 그 중심에는 메타버스라는 세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 하게도 비트코인의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속성과 자유의 본능이 정치적으로는 탄압을 받고 과학적으로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제공하는 것이다.
환경적인 관점에서는 석유로 대변되는 화석에너지에서 친환경, 저탄소로 에너지 헤게모니가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비트코인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는 단순히 채굴에 있어서 전기소모가 크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값싼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지역에서 값비싼 지역으로 비트코인이라는 디지털전선으로 에너지를 이동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구촌 특정 지역에 편중되어 있던 에너지 생산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올 일련의 사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국지전으로 발발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역시 천연가스로 대변되는 에너지 전쟁이지만 이면에는 비트코인의 해시율과 관련성이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비트코인이 여러 국가들의 법정화폐를 대신하여 전 세계의 주요 통화로 자리 잡을 것이고, 한 국가가 가지는 돈의성격을 재정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큰 영향이 있을 것 같다. 돈은 다른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근간이기 때문에 아프리카나 남미 등 제 3지대에 살고 있는 후진국 국민들에게 헬스케어, 교육, 문화 등 안정적인 사회간접자본 제공과 기업활동 등으로 국가의 새로운 기반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비트코인은 탈중앙이기에 무정부 상태일 수 있으나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역설적인 개념을 수반한다. 즉, 특정인물이 방향성을 정할 수 없고 유기체와 같이 움직이는 성질을 지녔다. 결국 비트코인의 발명이 우리 인류에게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지구 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이 생태계 안으로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크든 작은 비트코인이 나아갈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