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 년만에 중학교 중간고사 시험장에 들어가게 됐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선생님과 2인1조를 이루어 시험을 감독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름하여 학부모 명예 시험감독관. 참여 민주주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학교 정책에도 부응하고 요즘 중학생들의 시험 분위기가 궁금하기도 해서, 이참에 학부모 시험감독관을 맡아 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내가 어릴 때의 학교는 선생님과 학생들만의 공간에 가까웠고 '학교로 어머니 오시게 하는 것'은 매우 엄청난 일이었다. 따라서 학부모가 시험감독관을 한다는 것 발상 자체가 낯설고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설레었다. 반면에 요즘 교육현장의 공정성 이슈가 얼마나 첨예한지도 느껴졌다. 시험이 얼마나 공정하게 감독되는지를 학부모가 와서 직접 보라는 걸까. 학군지도 아니고, 입시과도 무관한 중학교 시험이지만.
시험장 안에 수험생이 아닌 감독관으로 들어가는건 특이한 경험이다. 배정받은 교실로 이동하면서 학교도 살펴보게 된다. 시설이 요즘엔 이렇게 좋아졌구나, 복도에도 휴게공간이 있네. 학생 수가 줄어드니 교실도 공간이 널찍하고 쾌적하구나. 시험장 안에 들어서니 앳된 얼굴을 한 교복 차림 중학생들의 초조함과 긴장감이 그대로 전달된다. 시험장의 무거운 공기는 몇십 년 전과 같았지만 시험 진행의 디테일은 많이 달라져서 재미있고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1.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을 두 번 친다
시험시작 전에 시험 개요와 답안지 작성에 대한 안내방송이 나온다.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도 한번이 아니다. 5분 전에 예비 종이 치고, 본격적인 시험 시작시간을 알리는 본령이 울려, 실제 시험시간은 본령 이후부터 카운트된다. 예비 종이 울리고 나서 본령이 치기 전까지 시험장 안의 긴장감이 확 올라가니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진다. 또한 시험시간 종료 5분 전에도 시험 종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학생들이 시간을 착각해 실수하지 않도록 밀착 안내를 하겠다는 것이다.
2. 시험 도중에 화장실에 간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학생들이 시험을 치다가 화장실에 간다는 거다.
예전에는 화장실에 가겠다는건 부정행위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이 여겨져, 응급실에 실려가기 직전 정도는 되어야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을 꺼낼 수 있었다. 나는 초중고 12년 동안 시험 도중에 화장실에 가는 학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중학교에서는 시험을 보다가 화장실을 간다.바로 이때 학부모 감독관이 필요하다. 교사가 시험장에 머물러야 하니 학부모감독관은 학생과 동행하여 화장실을 오간다. 이때 혹시라도 있을 부정행위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같은 층보다는 위, 아래층 화장실로 무작위로 데려가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배치된 반에서는 학생들이 유난히 긴장을 많이 했는지 여러 명이 화장실에 갔다. 4명이나 번갈아가며 화장실에 가는 바람에 학부모 감독관인 나도 동행하느라 계속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다. 시험 도중이라 학생들이 뛰어서 화장실을 오가니 덩달아 나도 함께 달렸다. 시험장에 꼼짝않고 서 있느라고 다리가 아플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뛰어서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오랜만에 숨이 차게 운동을 했다. 혹시 시험시간에 화장실까지 다녀오고, 쉬는 시간에는 다음 시험 공부를 하려는건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3. OMR카드 수정이 가능하다, 화이트(수정액)를 사용해서.
예전에는 OMR카드에 마킹을 잘못하면 고칠 방법이 없어, 새로운 OMR카드에 다시 기입해야 했다.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마킹도 수정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OMR카드를 새로 달라는 아이들이 있다. 문제 풀기도 전에. 이름과 날짜를잘못 썼다고 새로운 카드를 달란다. 귀여운 녀석들.
설마 이렇게 마킹하지는 않겠지. 출처 네이버 블로그.
4. 화이트를 안 가져오는 아이들이 꽤 있다..
그러면 학교에서 빌려준다.
OMR카드에 답안을 마킹하고 고칠 때는 화이트를 이용해야 하는데, 화이트를 안 가져오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컴퓨터 사인펜은 챙기면서 화이트는 빼먹는 걸까. 평소에는 화이트 없이 다녀도 시험날은 챙길 법도 한데, OMR카드를 마킹하다가 말고 화이트가 없다고 손을 드는 아이들이 한 반에 서너 명은 된다. 그러면 학교에서 친절하게 화이트를 준비해 놓았다가 필요한 아이들에게는 빌려 준다.
이때 학부모 감독관이 또 필요하다. 선생님은 교탁 앞에서 교실 전체를 감독해야 하고, 학생은 책상에 앉아있어야 하니, 화이트를 건네주기 위해서는 학부모 감독관이 달려가야 한다. 시험시간 종료가 다가오면 교실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손을 들기도 해서 선생님과 학부모 감독관이 둘다 화이트를 들고 동분서주하기도 한다. 학생들은 화이트 사용이 끝나면 다시 손을 들고 예의바르게 돌려준다.
시험볼때 화이트는 챙겨옵시다. 없으면 불안하지도 않니...
중학교 시험장 풍경은 한편으로는 매우 삼엄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의외로 자유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시험 중간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화이트가 없는 학생에게는 화이트를 챙겨주다니, 학생이 최대한 좋은 성적을 거두게 하고자 배려하는 느낌도 들었다.
반면 옛날과 같은 변함없는 풍경도 있다.
시험을 마치는 종이 치고 답안지를 걷자마자 한쪽에서는 머리를 부여잡고 '아~~~~ 망했어!' 하고, 한쪽에서는 '몇번 답 뭐야??'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서로 답을 맞춰보는 소리를 들으며 학부모 감독관은 교실 밖으로 나왔다. 여러모로 고생한 어린 학생들이 모두 시험을 잘 보기를 바란다.
사족.
시험 도중이라는 긴급한 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는데도, 학생들이 하나같이 용변 후 손을 잘 씻고 나왔다. 어려서부터 위생관념이 몸에 배어있는걸 알았다.
사족 2
요즘 학교에서는 학부모의 참여를 많이 유도하고 있는데, 참가 인원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꽤 많다고 한다.
잘 알려진 말이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내 아이를 위할 뿐 아니라 내 아이도 위해, 사회적인 협조와 절제가 적절히 오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