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티 - No Make Up
자꾸 거울 보지 마
몸무게 신경 쓰지 마
넌 그냥 그대로 너무 예쁜 걸
No make up
No make up
No make up일 때 제일 예쁜 너
얼마 전에 머리를 짧게 쳤다. 중학교 때부터 늘 숏컷 머리를 유지하다가 그 마저도 질려서 2년 정도 머리를 길렀었다. 기르면서 레이어드 컷도 해 보고, 파마도 해 보고, 단발도 해 보고 하루가 멀다 하고 미용실을 들락거리며 머리에 별 짓을 다 해봤는데 마음에 쏙 드는 스타일이 없었다. 고민 끝에(사실 굉장히 즉흥적으로 잘랐다.) 다시 숏컷으로 잘랐다. 근데 막상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만족스럽기보단 고개가 갸우뚱 기울어졌다. 어라? 이게 아닌데. 인생 머리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마음에 쏙 든다기보단 그냥 뭐, 그럭저럭 봐줄만했다. 그래도 거추장스러운 머리털을 다 없애버리니 속은 후련했다.
다시 숏컷으로 자른다고 하면 뜯어말릴 게 분명해서 엄마한테는 그냥 살짝 다듬으러만 간다고 했다. 다시 중학생이 된 기분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마주한 엄마가 텅 빈 공허한 눈으로 '어, 어 괜찮네.'하고 다시 베란다로 들어가 화분을 돌보기 시작했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아하니 역시나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으며 슬쩍 머리 괜찮지 않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하도 짧은 머리 자주 봐서 적응됐어.'라고 대답하곤 밥만 푹푹 떠먹을 뿐이었다. 음, 진짜 마음에 안 드는구나. 그래도 뭐 어쩌겠어, 엄마 딸인데.
머리를 자르고 나서 처음 하루이틀은 아침에 보는 거울 속에 내가 좀 어색했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니 한층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역시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과 함께 잠깐 어색했던 거라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하긴 머리를 볶든 삭발을 하든 내 얼굴은 어디 안 간다. 내가 한창 미용실을 들락거리며 이 머리, 저 머리를 시도하느라 머리카락을 달달 볶아댈 때 엄마가 늘 해주던 말이었다. 머리를 어떻게 하든 내 얼굴은 어디 안 간다고. 미용실에 돈 좀 그만 바르라는 말인지 아님 내 딸은 뭘 해도 다 예뻐라는 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아마 후자는 아닐 듯싶다.) 그 말이 왠지 모르게 나에게 위안을 줬다.
내가 중학교 때쯤인가 자주 듣던 노래이다. 노 메이크 업. 화장 안 해도 예쁘고, 안 차려입어도 충분히 예쁘다고 말해주는 노래. 온갖 연예인 오빠들에게 빠져있던 그땐 나한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들어보니 이제는 내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감과 여유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려 꾸며대지 않고, 두터운 화장으로 피부를 덮지 않고 나를 나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자신감은 그런 데서 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다.
엄마가 나에게 자주 말하는 어록이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있으면 거울 좀 그만 봐라, 거울 본다고 뭐 안 달라져. 살쪘냐고 물어보면 아휴 그냥 살아. 오늘 입은 옷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면 왜 괜찮은데. 얼굴에 잡티가 올라와 화장이 좀 두꺼워 보이는 날엔 그냥 화장하지 마, 네 나이 땐 그게 제일 예뻐. 이렇게 하나하나 뜯어보니 위로가 되는 말들이다. 벼락 치듯 혼내는 것 같은 말투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알맹이 같은 단단한 마음을 나는 안다. 뭘 하든, 뭘 입든 넌 내 딸이라는 그 마음을.
머리를 자르고 대외적인 첫 외출로 며칠 전에 엄마와 영화를 보고 왔다. 먼저 영화관 근처에 가 있던 엄마를 영화관 건물 지하 교보문고에서 만났다. 신간도 둘러보고 베스트셀러 서가도 둘러보다가 웃기게도 영화처럼 서가 맞은편에서 엄마와 마주쳤다. 서점을 나와 영화관으로 올라가는데 엄마가 머리 자른 것도 잘 어울리네, 라며 웬일로 칭찬을 건넸다. 나는 능청스럽게 그렇지? 다 잘 어울리지? 하며 받아쳤다.
자연스러워서, 꾸미지 않아서, 참 마음에 드는 외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