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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래 Oct 07. 2024

의미 같은 거, 없어도 괜찮아.

혁오 - 위잉위잉


집에서 뒹굴뒹굴 할 일 없어 빈둥대는

내 모습 너무 초라해서 정말 죄송하죠

위잉위잉 하루살이도

처량한 나를 비웃듯이 멀리 날아가죠

비잉비잉 돌아가는

세상도 나를 비웃듯이 계속 꿈틀대죠

쌔앵쌔앵 칼바람도

상처 난 내 마음을 어쩌지는 못할 거야

뚜욱뚜욱 떨어지는 눈물이 언젠가는 이 세상을 덮을 거야



쉬는 날이 생기면 왠지 모르게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고 싶어 진다. 하루 종일 끈질기게 책을 읽는다던지, 하루 3끼를 꼭 직접 만들어 먹는다던지, 일찍 일어나서 미라클 모닝을 해본다던지. 참고로 난 이 세 가지 중에 단 한 가지도 완벽하게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전부 깔짝깔짝 맛만 보다 말았달까. 책을 읽다가도 쇼츠에 빠져 30분 버리고, 미라클 모닝은 도전할 엄두도 안 났다. 그래도 먹보답게 하루 2끼는 매일 해 먹는다.(아침에 일어나지를 못 해서 늘 점심, 저녁만 먹는다.) 매일 밤 자기 전에 내일은 생산적으로 보내야지, 고요한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야지, 밀린 과제를 해결해야지, 다짐한다. 다만 여기서 내가 한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 새벽 2시에 잠을 청하면서 저런 야무진 계획을 세운다는 거다. 결국 늘 예상한 대로 느지막이 일어난다.


엊그제만 해도 오후 2시에 눈을 떴다. 벌떡 일어나 움직여도 모자랄 마당에 몸을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미적거리며 의미 없이 휴대폰을 뒤지다가 겨우 몸을 일으켰다. 오후에 일어나든 오전에 일어나든 방 청소를 소홀히 하진 않는다. 다이소에서 산 귀엽게 생긴 먼지떨이로 간 밤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돌돌이로 침대 위 머리카락도 박멸시킨다.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샤워는 꼭 하는 편이다. 아무리 집이라지만 씻지도 않고 꼬질꼬질한 상태로 있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사람은 잠을 자면서도 땀을 흘린다고 했다.) 씻고 나오면 늦은 점심을 먹는다. 저녁을 후하게 먹는 걸 좋아해서 늦게 일어난 날엔 점심을 거하게 차려 먹지는 않는다. 빵을 구워 먹거나 주먹밥을 만들어 먹거나 소소하지만 요긴하게 챙겨 먹는다. 그러고 나면 저녁밥을 먹을 때까지 약 3시간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자, 이제 이 여유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는데, 이게 영 쉽지가 않다. 밥 친구인 아이패드를 끄지 못하고 저녁때까지 붙잡고 있을 때도 있고, 인스타그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다. 휴대폰, 아이패드, 책을 앞에 두고 멀티플레이어 마냥 유튜브를 보다가 책을 읽다가 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그럼 저녁을 먹는다. 그러고는 뒹굴거리다가 잠에 든다.(사실 새벽 내내 휴대폰 한다.) 잠에 들기 전에 생각한다. 나 오늘 하루를 잘 보낸 게 맞나? 그러면 대답은 늘 '아닌 것 같은데'였다. 휴일을 보내고 다시 일상에 복귀하면 그제서야 쉬는 날이 좋았는데, 그날 집에서 해 먹었던 거 맛있었지,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언제부턴가 여유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다는 강박에 빠져있는 것 같다. 오후 느지막이 일어났는데도 해야 할 일을 다 했음에도, 점심 저녁을 전부 직접 만들어 먹었음에도, 일어나 부지런하게 청소기를 돌렸음에도. 늘 의미를 찾아 헤맨다. 남들 눈에 생산적으로 비칠만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하게 오늘 하루를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분명 나 혼자 집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요즘은 해야 할 일을 마무리 지으면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하루종일 뒹굴거리고, 밥 먹기 전에 느닷없이 군것질을 하고, 넷플릭스로 드라마 정주행을 한다. 하고 싶은 걸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하면 속이 후련해진다. 내일도 잘 살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오후 느지막이 일어났을 때 내가 초라해 보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난 늘 움직인다. 늦게 일어나든 일찍 일어나든 자신이 할 일을 한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늦게 일어났다는 죄책감에 빠져있으면 우울하기만 하다. 늦게 일어난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인데, 후회해서 뭐 하겠는가. 일단, 움직여야 한다.


미라클모닝이 느니, 갓생이 느니, 나도 의미를 쫓아 가랑이를 찢어본 적이 있다. 조금은 나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근데 이것저것 다 해봐도 역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제일이다. 조금 초라해 보여도 되고, 처량해 보여도 되고, 게을러 보여도 된다고 생각한다. 배우 손석구의 인터뷰 내용 중에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젊을 때 할 일이 없어서 방에 누워서 천장만 하루종일 쳐다봤다고. 그런 시간 후에 그는 과연 사랑받는 배우가 되었다. 집에서 좀 빈둥빈둥 대면 어떤가. 어떤 시간이든 허투루 지나가는 시간은 없다. 하루종일 누워있었든, 드라마만 봤든, 아무것도 하지 않았든 그 시간도 어쨌든 나의 시간이다. 그 시간 안에서의 나의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 기억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 그때 그랬지, 그런 시간도 있었지, 하면서.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매사에 의미를 찾아 헤매는 것은 너무 징그럽다. 조금은 이유 없이 행동해도 되고 때로는 멍청해도 된다. 꼭 의미가 있어야 반지를 끼는 건 아니다. 그냥 예뻐서, 끼고 싶어서 끼기도 한다. 모든 일에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한다면 그게 곧 나만의 의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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