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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미래 Oct 09. 2024

두둥실, 떠오르는 기억.

동방신기 - 풍선


지나가버린 어린 시절엔

풍선을 타고

날아가는 예쁜 꿈도 꾸었지

노란 풍선이 하늘을 날면

내 마음에도 아름다운 기억들이 생각나



9월이 되면 운동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노란색 체육복, 잔머리 하나 없이 하나로 꼭 묶은 머리, 끈 풀린 운동화, 운동장 흙냄새, 교실 바닥에서 까먹던 도시락. 나도 나름 mz세대인데 기억나는 것들을 꼽아보면 왜 이렇게 아날로그스러운지 모르겠다. 그만큼 시간이 빠르게 흐른 걸까.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까, 운동회 때 동방신기의 노래에 맞춰 풍선춤을 춘 적이 있다. 반별로 무대를 준비해서 운동회날 선보이곤 했었다. 우산춤, 마임 등 별의별 걸 다 해봤는데, 그 해는 풍선춤이었다. 해는 뜨겁고 하나로 묶은 머리의 정수리는 타는 느낌이었다. 9월인데도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날씨에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반 친구들과 반티를 입고 단체로 똑같은 동작을 하고 있자니 조금 우스운 느낌도 있었다. 그때는 투덜거리며 이걸 왜 해야 하냐, 연습하기 싫다, 각자 자기가 든 풍선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며 온갖 불만을 토해 냈지만 지금 돌아와 생각해 보니 내가 겪은 9월의 기억 중에 가장 순수하고 무해한 기억이었다.


좋은 기억은 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오랜 시간 우려야 사골국 맛이 깊어지는 것처럼 오랜 시간 내 안에서 숙성시킨 기억이 깊게 내 안에 남는다. 당시엔 별로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고 생각됐던 것도 시간이 지나 그 경험이 희귀해지는 때가 오면 별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새삼스레 소중한 기억으로 변한다. 안테나를 뽑아서 쓰던 스마트 폰을 들고 놀이터 그네에서 개그콘서트를 봤던 기억, 초등학교 입학 전 커터칼로 깎았던 연필. 오래 묵은 기억일수록 지금은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일수록 더 귀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어린 시절이 조금은 그런 의미인 것 같다. 지금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싫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가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거 사 먹고, 엄마가 골라준 옷 말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 자유로운 지금이 훨씬 좋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의 시간은 두고두고 가끔 꺼내보고 싶은 기억이다.


  글을 쓰다 보면 아주 예전의 나부터 최근의 나까지 머릿속의 기억을 꺼내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이번엔 어떤 에피소드를 녹여볼까, 기억을 뒤지는 일이 잦아진다. 기억을 파헤치다 보면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풍선이 하늘 위로 뜨는 것 마냥 수면 위로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런 기억을 만날 때마다 반갑다. 묵혀 두었던 기억이 다시 살아나면 내가 살아온 인생 안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구나, 이런저런 시간이 나를 지나갔구나, 하며 그동안의 시간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희한하게도 그런 기억은 노랫말 한 줄에 떠오를 때가 많다.


노래 속에서 동방신기에게 노란 풍선이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존재라면 나에겐 그들의 노랫말이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존재이다. 익숙한 노랫소리를 들으면 흙먼지가 날리던 운동장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춤을 추며 옆에 있는 친구와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던, 엄마가 나를 보고 있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던 기억이. 6년 내내 운동회를 했는데 유독 그 해 운동회의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9월만 되면 운동회의 기억이 떠오른다. 유치하지만 나름 진지했던, 불만이 가득했지만 내심 즐거웠던. 천방지축이었던 그 나이의 기억이 노란 풍선이 떠오르는 노랫말과 함께 내 안에서도 두둥실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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