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압 없이 올라온 대가
깊은 바다에서 너무 빨리 올라오면 죽는다.
잠수부들은 이걸 '잠수병'이라고 부른다. 겉으로는 멀쩡하다. 상처 하나 없다. 하지만 몸속에서는 질소 기포들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며 조용히 모든 걸 망가뜨린다. 혈관을 막고, 관절을 부수고, 신경을 마비시킨다.
감압 과정을 생략한 대가다.
나는 감압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강제 청산 다음 날, 나는 출근했다. 어제까지 있던 5천만 원이 오늘은 없다. 그 사실을 머릿속에 품은 채로 샤워를 했다. 셔츠를 입었다. 차 시동을 걸었다.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주차하고, 엘리베이터 타고, 자리에 앉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네, 좋은 아침이에요."
입이 움직이는 동안 뇌는 어딘가 다른 곳에 있었다. 몸만 출근한 거였다.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후회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문을 걸었다.
수업료 크게 냈다 치자. 돈은 다시 벌면 돼. 나는 괜찮아.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차분했다. 전화받고, 보고서 쓰고, 점심 먹었다. 무너지지 않는 나를 보며 스스로 대견했다. 나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그건 강함이 아니었다. 마취였다.
뇌가 감당할 수 없는 충격 앞에서, 스스로 차단기를 내려버린 것이다. 회복한 게 아니라 느끼지 않기로 선택된 것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잠수부가 감압을 건너뛰고 수면 위로 튀어 오른 것처럼, 나는 심해에서 육지로 순식간에 올라왔다.
몸은 멀쩡해 보였다. 기포는 이미 혈관 속에서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이상한 일은 뜬금없는 곳에서 시작됐다.
어느 날부터 양팔 감각이 둔해졌다. 얇은 막이 한 겹 씌워진 것 같았다. 저린 듯 저리지 않은 듯, 묵직하고 먹먹한 느낌이 하루 종일 따라다녔다. 명치끝에는 뭔가 걸린 듯한 답답함. 숨을 깊게 들이마셔도 폐의 절반밖에 안 차는 기분이었다.
이상했다.
잃은 건 돈인데, 왜 팔이 저린 거지? 왜 숨이 반밖에 안 쉬어지는 거지?
병원에 갔다. 혹시 디스크인가. 근무력증인가. 뭔가 원인이 있어야 했다. 의사가 뭔가를 발견해 주길 바랐다. 원인이 있으면 고칠 수 있으니까.
결과는 허무했다.
"뼈나 신경엔 이상 없는데요. 스트레스성일 수도 있으니 근육 이완제 드릴게요."
병원 문을 나서며 멍했다. 팔은 여전히 물 먹은 솜 같은데, 의학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스트레스성.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스트레스성이라는 건, 몸이 진짜 아픈 게 아니라는 뜻이고, 그건 내가 그냥 약한 거라는 뜻처럼 들렸다.
그 해석이 싫어서 더 모른 척했다.
한참 뒤에야 실마리를 찾았다.
의사이자 심리치료사인 가보르 마테의 책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를 읽었을 때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감정을 억압하면 몸이 대신 신호를 보낸다고. 의식이 외면한 것을 신체가 대신 표현한다고. 원인 모를 만성 통증, 이유 없는 피로, 자가면역 질환—상당수가 처리되지 못한 감정이 몸의 언어로 번역된 것이라고.
나는 입으로는 "괜찮다"라고 했다. 수업료 냈다고, 다시 벌면 된다고.
하지만 그 말들은 진짜가 아니었다.
인생을 뒤흔든 상실을 나는 단 하루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 공포도, 자책도, 분노도—전부 밀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잠수병에 걸린 잠수부처럼, 해소되지 못한 감정의 기포들이 혈관 속을 떠돌고 있었다.
팔이 먹먹한 건 증상이었다.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신체의 먹먹함은 곧 관계로 번졌다.
팔 감각이 무뎌지자, 사람을 향한 마음의 감각도 함께 무뎌졌다. 그때는 그 두 가지가 연결된 줄도 몰랐다. 그냥 사람들이 싫었다. 미워서가 아니라 버거웠다.
제발 나한테 말 걸지 마.
예전에는 즐겁지 않은 날에도 웃을 수 있었다.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게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그날 이후로는 안 됐다. 성격이 변해서가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도 아니었다.
배터리가 0%인 폰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과 같은 원리였다.
나는 그때 내가 왜 이러는지 몰랐다. 그냥 내가 이상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돈 잃어서 사람이 피폐해진 거라고, 스스로를 구제불능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수면 아래 있었고, 제대로 올라오는 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기포는 여전히 몸속을 떠돌았고, 나는 그것을 '몸이 망가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약하다는 증거'로 읽었다.
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
참고: 가보르 마테,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When the Body Says No,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