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푸르름이
시작은 작디작은 씨앗 한 줌이었다. 그것들이 물을 먹고 관심을 받자 작고 예쁜 싹을 틔웠다. 뜻 모를 기쁨이 느껴졌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를 지켜보는 심정이었다.
머리를 내민 싹들은 조금씩 자라며 이제는 화려한 꽃이 되기를 원했다. 더 높이 자라고, 더 멀리 뻗어나가기를 바랐다. 나는 싹들이 꿈을 이룰 수 있게 물을 주고, 비료를 뿌리며 최선을 다했다.
나의 정원 이곳저곳에서 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완연한 봉오리를 틔운 꽃들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난 그것을 노력의 결실이라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꽃들이 나의 정원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꽃보다 작은 식물부터 하나 둘 시들기 시작했고, 그제야 나는 꽃의 화려함에 매료되어 다른 식물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어느새 나의 정원은 꽃이 아니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꽃의 화려함에 취해 다른 식물들을 잊고 지냈던 지난날들을 후회했다. 그러나 정원은 이미 꽃들로 가득 차버린 후였다. 그것들은 화려했지만 차가웠고, 아름답지만 금세 시들었다. 꽃들을 돌보느라 내가 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왔던 다른 식물들은 전부 잃게 되었다.
내 정원을 차지해 버린 꽃의 이름은 '욕심'이었다.
뒤늦게 후회했지만 이미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했다. '예전의 소박했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꽉 쥔 손을 펼 수 있을까? ' 여러 물음들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푸르렀던 예전 나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욕심의 꽃을 뽑아내고, 또 뽑아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감사가 자랄 씨앗을 심었다. 평온이 자랄 씨앗을 심었다. 균형과 만족이 자랄 씨앗을 심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천천히 뿌리를 뽑아내고, 씨앗을 뿌리고 흙을 덮고 물을 주었다.
조금씩 정원이 다시 숨 쉬기 시작했다. 다양한 식물들이 어우러지며 다시금 생명력을 되찾아갔다. 욕심을 버리니 조금씩 숨이 쉬어졌다. 가슴에 여유가 끼어들 틈이 생겼다.
화려한 꽃은 아름답지만, 정원의 본질인 늘 푸르름에 가닿지 못하고,
욕망은 강렬하지만, 삶의 본질인 만족에 가닿지 못한다.
당연한 것들은 외려 알기 어렵다.
그저 겪고 나서 사무치게 깨닫게 될 뿐.
화려한 꽃 향기는 이제 싫다. 푸르른 정원의 소박한 향기가 좋다.
나를 위로 밀어 올리는 욕심은 이제 싫다. 등뒤에서 받쳐주는 균형과 만족이 좋다.
그래. 이제 나는
그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