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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May 28. 2024

계절은 날씨의 변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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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가벼운 산책길에 올랐다. 주어진 시간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40분이지만, 그래도 여유를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자그마한 초코맛 막대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현관을 나섰다. '원래 이 사탕에 우유맛이 났던가?' 오랜만에 굴려보는 막대 사탕의 부드러운 달콤함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회사 밖으로 나오니, 봄 내음이 코로 빨려 들어왔다. 앞머리가 이마를 스치며 기분 좋게 살랑였다. 경쾌한 발걸음 때문인 건지, 오전 내내 불편했던 새로 산 구두도 그렇게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소방서 모퉁이를 돌아 작게 나있는 길에 들어섰다. 봄보다 먼저 핀 자그마하지만 선명한 색체의 개나리 덤불이 나를 반겼다. 작게 나있는 왕복 4차선 도로 건너편으로는 신축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그 때문인지 사람 키의 세배 정도 되는 거대한 철제 팬스가 쳐져있다. 그곳과 대비되는 이 쪽의 개나리길이다. 차도 별로 다니지 않고, 사람도 거의 없는 길. 저 멀리까지 이어진 개나릿길의 향연을 보니,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며 눈이 빛났다. 핸드폰을 꺼냈다. 이쪽 그리고 저쪽 구도를 바꿔가며 연신 셔터를 터뜨렸다. 문득 누가 보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다시 카메라 화면으로 눈을 옮겼다. 길가에 핀 개나리를 한번 바라보고, 카메라 안의 개나리를 바라보길 두어 번. 사진이 어쩐지 만족스럽지가 않다. 이윽고 어떤 감상적인 생각 하나가 형태를 갖췄다. '아름다운 순간은 붙잡을 수 없구나...' 하는 서글픈 생각이. 돌이켜보면 마음속에 소중한 것이 생기면 만나면 붙잡으려 안달했다. 버릇처럼 그랬다. 그럴수록 내게 멀어졌지만.


  쓴웃음이 났다. 개나리꽃이 예쁘지 않게 찍힌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미련이 남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네.' 한 번도 잡혀준 적 없고 잡혀줄 리 없는 아쉽고 아쉬운 그 마음은 언제나 나와 함께였다.


  그러다 문득 언제부터 내가 시간을 내어 산책을 다닐만큼 이렇게 봄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릴 때에 나는 봄이 오든 말든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기 바빴다. 가상의 세계에서 그것이 삶의 전부인양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현실의 세계가 어떻게 변하든 관심이 없었다. 오직 특별한 재미와 게임이 주는 자극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할 뿐이었다. 그렇게 철저히 게임만 하며 실제 세상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온 나는, 세상이 어떤 날 어떻게 싹을 틔우는지, 어떤 색으로 물드는지 알지 못했다. 봄이 오면 이내 꽃들이 세상의 부끄러운 얼굴을 내미는데, 그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다.


  식상한 변명인지도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고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말 밖에는 별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더 얘기해 보자면 직장에 들어가고 보니, 잠이 안 와서 햇빛이 있는 낮에 자주 산책을 하다 보니, 먹고살 걱정을 하다 보니 자연 속에 내가 모르던 아름다움이 있었다 정도일까?


  살다 보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은 어떠한 의미로 치환된다. '즐겁다. 별로다. 계속하고 싶다. 그만하고 싶다.' 같은. 만약 경험을 하는 동안 흥미가 생긴다면 즐길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넘어서 즐기기는 단계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건들이 있다. 환경의 변화다. 물론 새로운 경험을 그냥 한번 해보기 위해서는 용기와 의지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경험해보는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즐기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는 일'까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먹고 살기 위해(의지력) 컴퓨터 게임을 끊고 취업(환경의 변화)을 하게 되면서 산책을 즐기게 된 것처럼 말이다. 또 소모임 앱을 설치하고 괜찮은 트레킹 동호회를 찾고(의지력 발휘), 그 오프라인 모임에 소속(환경의 변화)되어 활동할 수도 있다. 어떤 일이 되었든 의지력을 발휘해 일단 경험해보고, 그 일이 끌린다면, 그래서 오래 지속하고 싶다면 '반드시 반강제적으로라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나를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라고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저 멀리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인지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왁자지껄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황급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태연하게 걸었다. 입안을 굴리던 사탕은 어느새 거의 다 녹아 플라스틱 막대 끝이 느껴졌다. 겨우 남아있는 딸기맛 사탕의 마지막을 혀로 굴리면서 봄이 주는 생동감을 다시금 코로 들이쉬었다.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정답게 느껴졌다. 새삼 들이쉬는 숨에 행복이라는 감정이 차올랐다.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유 따윈 없다. 봄이니까. 나에게 봄은 어느 따사로운 날에 달콤한 막대사탕 그리고 목적지 없는 걸음의 동의어다.


  개나릿길을 지나 더 걷다 보니 봄바람에 나직이 흔들리는 이름 모를 나무 밑에 도착했다. 살랑이는 햇살이 눈동자를 간지럽힌다.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보았다. 혼자 있는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웃으며 눈을 찡긋 감아보기도 했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태양이.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온도와 습도가. 봄날 바람이 날리는 은은한 속삭임이. 몸에 닿는 모든 것들이 적당해서. 마치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지금 나를 위해 준비된 게 아닐까 하는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점심시간에 누리는 여유로운 산책. 사람들은 이것을 소소한 행복이라 부른다. 하지만 나에게 봄은 결코 소소한 날이 아니다. 온 마음으로 누려야 하는 날이다. 그렇게나 기다렸던 순간이니까. 계절의 의미를 몰랐던 어렸던 나에겐 그저 무의미한 날씨의 변화였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두 팔 벌려 고집스레 품에 안고 싶은 계절이다. 파스텔톤 색연필로 한가득 남기고 싶은 계절이다.


  봄이라는 계절, 그래. 그건 매년 맛볼 수 있는 맛있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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