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을 향한, 나의 시선."
모두가 잠든 그 시간,
괜스런 상념에 젖어
혼자 깨어 묵묵히 하늘을 바라본다.
밤하늘에 뜬 달을 볼 때마다,
줄곧 그런 생각을 해왔다.
그는 더 가까워 지려 하지도,
더 멀어지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심스레 아슬아슬한 거리를 맞춰간다.
그리고, 조용히 어둡고도 고요한 밤을 비춰온다.
지구를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잔잔하게 지구의 궤도에 맞춰 한 걸음씩 합을 맞춘다.
저 모습은,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내가 바라는 모습이다.
그리고ㅡ
내가 달을 동경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늘 강렬히 불타오르는 태양을 칭송한다.
이 태양은 오래전부터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달은 태양이 지고 어둠이 드리운 가운데에서,
살며시 우리에게 다가온다.
태양이 자신의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이 가장 고요하면서도 외로워지는 그 시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태양의 따스함이 사라진 쓸쓸한 그 시간에,
아무런 요구도 없이, 조용히 빛을 드리운다.
어떠한 부담도 없이, 묵묵히 끌어당긴다.
그러나 이 끌어당김은, 상대를 강제로 끌려오게 하진 않는다.
함께 하지만, 그 안에는 늘 배려와 존중이 깔려있다.
상대를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무리 없는 끌림은
어쩌면, 신사적인 끌림이라 표현해도 될지 모른다.
허락되지 않은 직진은, 곧 충돌이니까.
배려가 없는 달이었다면,
지구와 진작 충돌하여, 바스라 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달을 사랑하며, 달을 동경하고,
그런 달을 닮고 싶다.
내가 이런 달을 갈망하는 건,
어쩌면 나와 비슷한 모습을 찾아서 일지도 모른다.
항상 그래왔다.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면서,
관계에 있어서. 항상 조심스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움은 처음엔 배려가 아니었다.
그건, 자기혐오로 인한 방어기제이자
위축으로 인한 경계심이었다.
난 남들이 날 부담스러워하진 않을지,
나란 사람을 좋아하긴 할지,
나를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이 있을지를,
항상 고민해 왔으니까.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난 수 없이 부딪히고 긁혀,
곰보빵 같이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이.
나의 마음과도 너무나 닮아 보였기에,
그래서 달을 사랑하려 하나보다.
나란 사람은,
원래는 남을 끌어당기려는 행성과 같은 사람이었다.
끝없이, 남이 나를 봐주길 바라고,
다가와주길 바라고,
나를 사랑해 주기만을 바라왔다.
그 안에,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에 대한 고려는.
흐릿했던 것 같다.
어쩌면, 행성보다는 블랙홀이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자신에게 끌어당긴다.
하지만 그 끌어당김에, 상대의 동의나, 감정은 없다.
그리고, 그 폭력적인 끌어당김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온 별들은,
그 상처받고도 어두운 마음의 중압감에,
갈갈이 찢어져 부서진다.
그리고 결국 또 혼자가 된다.
그 관계를,
사람을,
마음을,
본인이 외로움이란 어두움의 무게로
가차 없이 짓눌러 으깼으니까.
당연한 결과이다.
그렇게 또, 외로움에 아이처럼 울며,
다음 상대를 끌어당기러 떠난다.
또 그들은 부서지겠지만.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리고 그 쓸쓸한 괴물의 절규는
크기를 더욱 키워
더 많은 사람을 끌어당겨 짓이긴다.
참, 못되면서도 불쌍한 블랙홀이다.
그 괴물은 울면서
타인을 계속해서 삼키고 짓이긴다.
외로우면서도 관계를 파괴한다.
그리고 파괴해 놓고, 외로워서 또 운다.
본인을 살리고 싶으면서도
본인을 외로움에 스스로 가두고 죽인다.
생존 본능과 자살적 행동이 공존한다.
그러나 그 생존 본능은 타인을 갈망하면서도,
타인을 상처 입히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기적이면서도, 구슬픈 모순이다.
계속해서 살을 찌우던 아이 같은 괴물은
어느덧 깨닫는다.
이런 행동이 의미가 있을까?
나는 지금 나를 살리려 하면서도 죽이려 한다.
당장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타인을 일방적으로 갈구하며 그들을 짓이겨 왔다.
난, 뭘 하고 있던 거지?
다가와 주길 바라면서
그들을 떠나보낸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괴물은, 아이는.
그날 처음으로 맹목적으로, 본능적으로 살찌워 오던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잘못된 길을 너무나도 멀리 걸어왔다.
그 결과,
나라는 행성은 결국
블랙홀이라는 종결점에 이르렀다.
사랑을 원하던 아이는,
흉측한 괴물이 되어 타인을 할퀸다.
블랙홀은 블랙홀이다.
더 바뀌거나 붕괴하지 않는다.
질척한 갈망이 모여 만들어진 특이점.
이것을 바꿀 수는 없는 걸까.
괴물이 된 아이는 그 껍데기를 벗어낼 순 없는 걸까?
아이는, 나는.
그 속에서 계속 두들긴다.
손이 피칠갑이 될지언정.
이젠 돌이킬 수 없고,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지만.
두들긴다.
또 두들긴다.
계속해서 두들긴다.
그 어둡고도 질척한
감정의 늪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치며 울부짖는다.
난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는다!
이건 결국 스스로를 죽이는 일이다!
외친다.
소리 지른다.
선언한다.
수많은 두들김은 진동이 된다.
수많은 외침은ㅡ 울림이 된다.
피어오른다, 의지의 불꽃이.
튀어 오른다, 변화의 스파크가.
그리고 시작된다.
더 이상 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새로운 창조의 리듬이.
절망의 초신성으로 태어났던, 질척이는 특이점.
이젠 돌아갈 수 없는 종결점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의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새로운 시작을 향한, 창조의 울부짖음이.
불가능한 두 번째 초신성 폭발을 불러온다.
흉측한 괴물의 껍데기가 터지듯 부서진다.
거대하고 슬픈 블랙홀에서,
찬란한 빛이 울분을 토하듯 울컥 새어 나오며
그 두터운 껍데기가 깨어진다.
그리고 새로운 변화의 안개가 주변을 드리운다.
아이는 이제 웃고 있을까?
눈물 나게, 아름답다.
찬란한 창조의 안개에서
아이는 결정해야 한다.
나는 어떤 별이 되어, 노래하겠는가?
이젠 어떤 별이 되어, 타인을 비추려 하는가?
내가 고른 건,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강렬한 태양도 아니오.
저 멀리서,
차갑지 않은 푸르른 자태로
다가설 수 없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리겔도 아니오.
육중한 무게감으로, 압도를 선사하는 목성도 아니오.
그저,
멀지도, 그렇다고 가깝지도 않게.
다가설 수 있으면서도,
상대에게 정중히 선택을 묻는다.
빛나는 낮이 아니다.
외롭고도 쓸쓸한 밤에
조용히 침잠하는 그들을 비추는,
상처투성이 곰보 신사.
달이 되고 싶어라ㅡ
관계도, 사랑도.
배려와 존중이 깔려있는,
친절한 거리감.
그러나 거리감은,
다가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선을 긋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궤도에 진입하여,
그대와 한 발씩 맞춰 가도 되는지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정중한 요청이자, 본인에게로의 초대이다.
이것이, 상처 투성이 곰보 신사의
품격이자,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