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맞춘다는 것은
최근에 본 이종범 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인상적인 말이 있다. 작은 선택이라도 내가 한 시도가 차이를 만들었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의 재미를 아는 사람, 자신이 스스로의 삶에 대한 통제감을 가졌다고 느끼는 사람은 주인공성을 갖고 있다는 말. 그리고 그 주인공성은 쉽게 꺼지기도 해서 계속해서 장작을 넣어줘야 한다는 말로 이어지는 인터뷰였다.
주인공성을 갖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시도’이고, 나에겐 이미 축구를 시작한 것부터 시도인데, 이걸로 끝이 아니다. 그 시도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변주하여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오늘 훈련에서는 새로운 패턴플레이를 알려준다. 서로 약속한 장소에 가만히 서 있다가 배운 패턴플레이를 반복해서 연습한다. 패턴플레이 1번을 연습할 때 공을 2번과 3번으로 차야하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찬다. 익숙해질 만하면 패턴플레이 2번으로 넘어간다. 이때는 공을 차야하는 순서가 2번과 3번으로 바뀐다. 당연히 실수한다. 이 훈련이 진행되는 30분 내에 새로운 시도를 몇 번이나 했기 때문에 이미 머릿속은 과부하상태이다. 하지만 좌절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바로 다음 순서로 넘어가버리기 때문이다.
처음 몇 번의 훈련은 나의 모든 ‘시도’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에 좌절할 시간도 없었다. (축구장에 와본다는 것, 새 풋살화를 신어보는 것 등등의 시도 말이다. 이 정도는 시도-즐거움쯤 되겠다.) 하지만 슬슬 내 수준을 깨닫게 되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이 동시에 생긴다. 그러면 시도-실수-당혹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반복된다. 특히 이런 당혹감은 패스나 포메이션 같이 팀원들과 함께 할 때 극대화 된다. 내 실수를 상대방이 고스란히 다 지켜보고 있는 거다! 일상생활에서 섬세하거나 웃기거나 하는 등등의 내 특장점을 내세울 자리가 없다! 오로지 방금 내 패스가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서 내 짝꿍이 그저 공을 주우러 열심히 뛰어가게 만드는 것이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 쌓인다!
하지만 이런 쪽팔림을 이겨내고 다시 (될 때까지) 시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내 시도를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우리 팀의 팀원들, 그 중에서도 주장이었다.
“괜찮아, 계속해봐.”
“좋은 시도. 굿.”
“끝까지 해봐.”
“방금, 좋았다.”
간결하고 단단한 문장이 내 당혹감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사이로, 치고 들어온다. 당혹감이 나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러면 나는 곧바로 다시 해본다, 될 때까지 혹은 끝까지.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도 알아차릴 만큼 실력이 는다. 재미가 생긴다. 나도 다른 팀원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계속해서 용기를 준다.
‘시도’를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은 누군가와 같이 할 수도 있는 거다. 장작은 혼자서 넣을 수도 있지만 옆에서 같이 넣어줄 수도 있는 거다. 발을 맞춰간다는 것은 이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