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축구 일지

1:3으로 대패하다

by 오늘영

반팔과 반바지 유니폼을 입을 수는 있지만, 아직은 쌀쌀한 초봄. 우리 팀은 다음 경기를 치렀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는 학생, 회사원, 주부 등등으로 구성된 아마추어 여자 축구팀으로 9:9 경기를 치른다. 실제 축구장의 2/3 크기의 운동장을 뛰고, 골대도 훨씬 작은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지만, 경기에는 모두 진심을 다해 참가한다. 이번 경기는 축구부가 활성화되어있는 고등학교의 인조잔디 구장. 잘 관리된 폭신한 잔디와 쨍한 야간경기장의 조명 아래에서 몸을 풀지만, 어쩐지 긴장이 가시지 않았다. 처음 서보는 경기장으로 공간이 낯설어 긴장도가 높다, 마음에 여유란 것이 없다. 더군다나 상대팀은 어쩐지 자신만만해 보인다.


오늘 나의 포지션은 왼쪽 윙백. 9명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팀은 딱 10명뿐이라 교체선수가 없다. 무조건 20분 4 쿼터를 모두 뛰어야 한다. 상대팀은 오늘 전체 20명이 나왔다. 우리보다 선수가 두 배나 많고, 기세가 좋다. 모두가 상대팀을 응원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어쩐지 기가 죽었다. 이번 경기는 엘리트 중고등부에서 정식 심판을 하는 분이 와주셨다. 갑자기 경기장에 강풍이 몰아친다. 춥다. 내 온몸의 근육이 긴장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사진은 chris hwang

1 쿼터 시작. 사이드로 치고 오는 상대팀의 발 빠른 윙어들로 그들을 막는 나는 정신이 아찔했다. 공을 잡고 있는 상대팀 윙어가 내 앞에서 나를 제치고 뛰어 나갈 때의 아찔함 하나와 나를 가운데에 두고 2:1 패스로 나를 벗겨내고 지나갈 때의 또 다른 아찔함 하나를 동시에 느꼈다. 그 아찔함을 느꼈을 때 그걸 막아줄 실력이 아직 나에겐 없었다. 곧이어 연속으로 2골을 먹혔다. 이유는 뭐냐고? 상대팀 오른쪽 윙어들의 스피드를 막지 못했고, 그들의 패스길을 막지 못했다. 속칭 알까기 (다리 사이로 공을 패스하거나 빠지는 행동을 말하는데, 이는 꽤 굴욕적으로 여겨지곤 한다)를 당했다.

첫 번째 골이 내쪽으로 달려온 윙어의 발에서 나왔을 때에 우리 팀의 주장은 나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괜찮아, 우리가 한 골 만회하자’라고 말해줬다. 두 번째 골이 연이어 들어갔을 때는 ‘내가 못 막아서 그래. 다시 해보자’며 말해줬지만, 이미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상대팀의 환호와 함께 몰려오는 나의, 너의, 우리의 좌절감.

함께 수비에 섰던 오리(애칭) 동생은 ‘언니 제가 이쪽에서 더 열심히 막아 볼게요!’라고 했고, 공격에 서있는 친구들은 ‘제가 이번에는 한 골 넣습니다!’라며 투지를 불태웠다. 이후 2 쿼터는 죽어라 막아 냈고, 그제야 나는 윙백이 윙어들의 공격을 어떻게 차단해야 하는지 몸으로 익혔다. 발 뻗지 말고, 몸으로 상대의 이동 경로를 막아.


3 쿼터에 우리 팀은 체력이 빠졌고, 상대팀은 교체선수를 쓰며 체력을 보전했다. 그 틈을 타 한골 더 먹힌 0:3 상황에서 우리 팀의 페널티킥 찬스로 드디어, 간신히 한 골이 들어갔을 때 나는 내가 넣은 것만큼 기뻤고 환호했다.

사진은 chris hwang


경기를 마치고 우리는 서로의 어깨와 등에 손을 올려 동그랗게 섰다. 방금 느낀 좌절감,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어떤 열등감과 패배감, 그럼에도 경기 시간을 꽉 채워서 내내 달린 투지, 방금 공을 뺏겨도 바로 다시 일어나서 쫓아가는 근성, 그 모든 것을 이 친구들과 방금 겪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우리는 앞으로 못해낼 것 같다는 의구심은 들지 않았다. 해낼 수 있어,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고, 성장할 것이고, 성장밖에 할 것이 없어. 어디서 이런 강력한 믿음이 나오는 걸까. 동그랗게 둘러싸고 서로를 의지해 선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팀 구호를 처음으로 경기에서 외쳤다.


‘위 아 원, 블랙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