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다

근데 장소가 런던과 파리

by 오늘영

런던과 파리


런던과 파리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도시다. 처음 유럽 여행을 계획할 때 이 두 도시를 가지 않는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다. 나의 유년시절을 지배했던 이미지들이 런던과 파리에는 수두룩 했고, 그게 무엇인지 지금부터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기차를 타고 런던으로 오는 동안 파업(strike)으로 열차 지연을 겪고, 그 덕분에 짐을 들고 퇴근길 지하철을 탈 수 없어 런던의 택시(블랙 캡, black cab)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빨간색의 이층 버스와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지하철 마크를 이동하는 내내 보았고, 블랙캡의 기사인 애쉬튼에게서 피시 앤 칩스 찐맛집 정보도 얻었다. (그 덕분인지 나는 피시 앤 칩스가 솔직히 맛있었다. 번외로 요즘 런던 자동차 시장에서 기아와 현대가 가격을 올려 저렴한 이미지를 벗는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루는 내셔널갤러리와 테이트모던에서 시간을 보내는 데에 일정을 모두 썼다. 내셔널갤러리에서는 고흐와 세잔, 쇠라, 마티스를 원화로 (직접! 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좋아하는 그림은 따로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쇠라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이다. 점묘법을 창시했다는 미술서적의 설명을 익히 들었고, 간접적으로 접했을 때에는 전혀 감흥이 없었는데, 그림이… 생각보다 크고 안정적이었다. 크고 안정적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인상적일 수 있는 건가. 이 크기를 한 점 한 점으로 그려낸 쇠라는 이 풍경을 얼마나 많이 관찰했을까. 질문만이 가득했다.

테이트모던에서는 프란시스 베이컨, 피카소, 앤디워홀, 데이비드 호크니는 물론 안드레아 거스키의 사진을 봤는데, 다른 그림들보다 거스키의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사진의 크기가 큰 영향도 있겠지만 <May Day >에서 보이는 사람 하나 하나의 흥분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한 명의 사람을 집중해서 볼 때의 전율도 있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의 격렬한 감정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에 주는 황홀경도 있는 거다. 사진의 설명을 번역기로 돌려보니 ‘거스키는 비유와 추상화를 융합하여 개인이 거대한 집단의 몸으로 변모하는 것을 묘사한다. 이 인물들과 카메라의 거리는 그들이 비개별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되어 있었다. 과연 적절했다.


다른 하루는 뮤지컬 맘마이아와 라이온킹을 보았다. 맘마미아는 1층 뒤쪽 좌석을 58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10만 7천 원)에 구했는데, 처음엔 아바(ABBA) 음악의 조금은 촌스러운 사운드에 투덜거렸다. 하지만 내 옆 좌석에서 눈가를 두 번 훔친 어린이와 같이 마지막에는 나도 눈물을 닦았다. 라이온킹은 3층 좌석을 고작 41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7만 6천 원)에 구매했다. 라이온킹의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무대 아래와 옆에서 악기를 치고 있던 사람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배우들의 분장과 움직임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었지만, 그 아래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에너지 하나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라이온킹은 꼭 다시 보리라. 훌륭한 작품을 충분히 본 마음이 넘실대는데, 공연장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광장에서 시위(demonstration)가 있었는지 내가 타고 가야 할 버스가 45분 뒤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와 함께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베이비시터는 자신의 고용주에게 급하게 전화해서 불안한 얼굴로 자신이 늦을 거라고 알렸다. 그게 전쟁 반대 시위라는 것은 버스를 탄 뒤 한 남성의 핸드폰 화면에서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일정으로는 배 안에서 런던의 랜드마크를 다 보고 가려는 욕심으로 템즈강 크루즈를 결제했다. 크루즈를 타며 한 번에 타워브리지, 런던아이, 빅벤을 다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43파운드(현재 환율로 약 7만 9천 원)를 지불했고, 알고 보니 샴페인이 포함에다가 배 안에서는 MR을 튼 가수가 라이브로 노래도 불렀다. (나중에 알아보니 템즈강 유람선은 종류가 꽤 많고, 계획해서 갔다면 더 저렴하게 탈 수 있었을 것이다) 2층에 앉아 혼자 샴페인을 홀짝홀짝 마셨고, 타워브리지가 열릴 때 옆에 흥 많은 친구의 사진을 찍어준 덕분에 나도 얼굴이 잘 나온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2층에서 볼 것(?)을 다 본 뒤 1층으로 내려오니, 핑크빛 싸구려 조명 아래에서 유람선의 승객들이 스웨덴의 국민가수 아바(ABBA)의 댄싱퀸(Dancing queen)을 따라 부르고 있었다.


“Dancing queen young and sweet only seventeen”


가장 중요한 후렴부를 모두가 따라 부를 때 한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활짝 웃으면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곡이 끝난 뒤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신은 스웨덴에서 왔으며, 동생의 기념일을 축하하려고 왔다고 했다. 나도 내 소개를 했고, 할머니는 나의 여행에 행운을 빌어주었다.


런던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에 도착한 첫날은 비가 왔는데, 구름이 가득 낀 에펠탑만 보는데도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때의 신남은 사진이나 이미지, 말이나 역사로만 접했던 에펠탑을 직접 내 두 눈으로 본다는데서 온 신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신남은 곧 사라졌다. 왜일까. 센 강변을 걸어서 아침 산책을 하고, 루이비통 박물관에서 마침 열린 마크 로스코 전시를 봤다. 뛸르리 정원에 앉아 시간을 때웠고, 오르세 박물관에서 인생 그림이 된 밀레의 <양 떼 목장, 밝은 달빛>도 만났으며, 한국인 투어를 통해 파리 시청사와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퐁뇌프 보며 걸었다. 하지만 자꾸 뭔가 부족했다. 내가 상상했던 혹은 꿈꿨던 파리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벌써 파리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2일이나 지난 뒤였다.

3일째 되던 날, 몽마르뜨 박물관(르누아르의 정원 이라고도 불린다)에 느긋하게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이어폰을 꽂았는데, 그때 깨달았다. 아, 음악이 없었구나. 내가 보아왔던, 느껴왔던 파리라는 도시는 영화나 영상을 통해서였고, 그 모든 장소에는 음악이 덧대어져 있었다. 몽마르트르 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열고 있던 스타인렌의 투쟁과 연대, 연인의 그림을 보고, 수잔 발라동의 집터를 복원한 곳을 거닐면서 나는 스텔라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사랑, 바게트, 파리)를 들었다. 그 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파리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내가 알던, 아니 내가 와보고 싶었던 파리 같았다. 달맞이 언덕 같은 몽마르뜨 언덕을 내려와 걸을 때, 루브르 박물관에서 나와 파리 올림픽 준비가 한창인 콩코드 광장을 걸을 때, 숙소로 돌아가는 길의 센 강변을 걸을 때, 마트에 들러 저녁으로 먹을 샌드위치와 망고주스를 살 때, 지금까지 아무런 감흥이 없어 실망했던 파리가 비로소 내가 원하던 파리가 되었다. 그걸 깨달은 날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이어폰을 빼고 양말과 속옷을 손빨래해 건조기에 넣었다. 건조기의 익숙한 기계음이 들렸다. 문득 한 달 전 내가 고시촌에서 돌아가는 건조기를 보았던 장면이 겹쳐 보였다. 건조기에 넣은 유로화 동전이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 존재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만들어 온 취향으로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상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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