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장소가 글래스고
나에게 여행이란
스코틀랜드에 대한 나의 지식은 아주 얄팍해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를 포함한 것이 우리가 부르는 영국(UK)이라는 점뿐이었다. 조금 더 보태자면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위해 오랫동안 싸워왔다는 역사가 있었다는 정도. 마침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로 가는 아이슬란드에어의 직항이 있어, 글래스고를 둘러보기로 했다.
글래스고 도심의 메인거리인 부차난 거리(Buchanan street)는 쇼핑몰과 식당이 몰려있는 도심의 주요 거리로, 부산으로 치면 남포동 중심가 같이 보였다. 쇼핑이나 물건에는 크게 흥미가 없어 곧바로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는데, 마침 어느 열려있는 문으로 할머니 두 분이 밖으로 나왔고 안에선 맛있는 냄새가 났다. ‘할머니(혹은 할아버지)가 방문하는 곳이라면 맛집’ 일 것이라는 경험적 데이터를 갖고 나는 그 가게로 망설임 없이 입장. <The wild olive tree>라는 카페 겸 간단한 식사메뉴를 판매하는 곳이었다. 입구에서 직원에게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니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 같았다. 직원이 건네준 메뉴판을 둘러보고 있는데, 테이블셰어가 가능하겠냐고 물었고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함께 앉게 된 알렉스(75세)는 이 가게에 매일 온다며 자신을 소개를 했다. 알렉스는 붉은색 해링본 내피가 있는 검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그에게 내가 글래스고가 처음이라고 하자 그는 단골포스를 폴폴 풍기며 직원을 불러 ‘한국에서 온 이 사람이 글래스고에서 3일 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추천’ 해 주었다. 그 덕분에 글래스고에 대해 1도 몰랐던 나는 무료로 진행하는 ‘글래스고 시의회 투어’에 가볼 수 있었다.
조지광장 옆에 위치한 글래스고 시의회의 1층 로비에는 넬슨 만델라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리석 계단, 그 옆의 손잡이, 카펫까지 모두 은은한 빛으로 과거 이 건물의 시간을 담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중세 유럽풍의 건물을 즐기는 것도 잠시, 그룹투어를 진행하는 담당자의 스코틀랜드식 억양(Scottish accent)에 미적응한 나는 그들의 말을 하나도, 정말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낯선 공간을 가득 채운 타인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는 것을 듣고 있으니 근래 느낄 수 없었던 기분이 다시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 그런 상황에서 내가 적응하는 방법은 모두 알아들은 척하며, 눈치껏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방법이었다. 대연회장의 천장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놀라고, 복도에 그동안의 시의회의장의 초상화를 보며 (열댓 점의 그림이 있었는데 그중 3명이 여성의장이었고, 현재도 여성의장이었다) 실제로 의원들이 앉아 회의하는 회의실에도 자연스레 앉았다. 그곳에서는 현역 시의원이 나와 무언가를 설명해 주었는데, 같은 투어 중인 할머니들이 그 의원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어대는 것을 보기(see)도 했다. 어떤 배경에서 시작된 행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의회가 시민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행동을 취한다고 느껴졌고, 그건 정치라는 이름에 걸맞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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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고에서는 호스텔에서 머물렀는데, 같은 방에 있었던 브라질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그 친구는 런던 지나 글래스고로 왔기 때문에 ‘런던의 밤은 꽤 살아있는데(alive), 글래스고는 느긋하다(chilled)’라고 비교하며, 자신은 런던이 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글래스고가 (결과적으로) 더 마음에 들었다.
특히 글래스고 현대미술관(GoMA) 앞의 동상이 결국 꼬깔콘을 쓴 채로 지내게 된 이야기가 좋았는데, 검색에 따르면 술 취한 시민이 길에 서있던 꼬깔콘을 동상 위에 올라가 씌웠고, 글래스고시는 이튿날 그것을 철거했지만 다음날 다시 꼬깔콘이 씌워져 있자, 글래스고시가 시민의 안전을 생각하여 결국 영구히 동상이 꼬깔콘을 쓴 채로 놔두었다는 이야기였다. 살게 된다면 글래스고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될 법한 이야기이지만 (그렇다면 당연히 스코틀랜드식 악센트를 연습해야 할 테다) 어디까지나 글래스고에서 살게 될 경우가 희박한 동양인의 편협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브라질 친구 외에도 홍콩에 온다면 페리를 꼭 타라고 알려준 홍콩에서 온 언니,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 정원을 알려준 일본계 미국인 모모, 코를 골며 자는 바람에 우리 모두를 곤란하게 했던 이름 모를 어떤 사람까지 호스텔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며칠간의 기억에 남는 친구가 여럿 있었다. 그중에서 마농을 빼놓을 수 없는데, 1층 침대를 썼던 나와 2층 침대를 썼던 마농은 입실한 날과 퇴실한 날이 같았다. 처음 만난 날, 그녀는 에딘버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프랑스인이라고 유창한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너 프랑스인인데 영어를 잘하네?’라고 내가 묻자, 마농은 그 말에 ‘맞아, 프랑스애들이 나쁜 X (bitch)지’라며 응수했다. 이런, 나에게도 차별의 언어가 자리 잡고 있었구나.
마농은 저녁시간마다 1층의 라운지에서 여러 사람들과 모여 카드놀이를 하며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어느 날은 나를 그 모임에 초대했다. 그들은 내가 처음 보는 카드놀이를 했고, 나는 룰을 전혀 알 수 없어 그들이 게임하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참여했고, 당연히 졌다. 진 게임을 내가 엄청나게 아쉬워하자 마농은 ‘네 인생 첫 번째 게임이었어. (지는 건) 당연하지. 괜찮아’라고 말했다. 마농에게서 여러 번 정곡을 찔렸다.
그 뒤로도 런던에서, 파리에서, 리옹과 안시에서(안시는 프랑스인들이 늙으면 노후를 보내고 싶은 도시 1위이고, 마농은 아직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올린 내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대해 마농은 빠짐없이 코멘트를 보냈고, 마농이 집으로 돌아간 뒤 한국식 비빔밥을 해 먹는다든지 잡채를 만들어 먹은 사진을 올릴 때마다 나도 dm을 보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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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어쩌면, 세계 곳곳에서, 그냥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아이슬란드의 집, 글래스고의 갤러리, 에딘버러의 성에서 느낀 내 인상을 통해서 그냥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래스고의 마지막 날 켈빈그로브 박물관을 둘러본 뒤 지도상 근처에 보이는 글래스고 대학을 향해 무작정 걸었다. 대학으로 가는 길에는 오래된 은행나무가 심겨 있었고, 분명 도로 같았지만 단 하나의 자동차도 지나가지 않았다.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 헤드폰을 끼고 무표정하게 걷는 사람, 후디에 손을 찔러 넣고 걷는 사람만이 간간이 있었다.
가까이에서 본 글래스고 대학은 거뭇거뭇하게 탁해진 외벽, 뾰족한 천장, 아치형의 창문과 창살까지 내가 상상하던 해리포터 소설 속의 그런 건물이었다. 맙소사. 완벽하다.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현대의 바퀴 네 개 달린 이동식 기계만 없었다면, 나는 해리포터 소설의 주인공이 된 상상을 더욱 만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왕 현대식 문물에 기분이 살짝 바뀐 김에 현대식 에어팟을 끼고, 한국의 라디오 방송을 켠다. 한국 시간은 오후 6시를 넘겼는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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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듣겠습니다. 너바나(Nirvana)의 Smells like teen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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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백번, 수 천 번 들은 그 기타 리프를 글래스고 대학을 걸으면서 듣게 되다니, 상상이 상상을 넘어 하늘을 날다 오히려 땅에 발 붙인 느낌을 더욱 세밀하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