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필요한 세상

by 오늘

이 글은 아마도 제 글들 중 가장 클릭수나 완독자의 수가 적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려견이라는 존재를 특별히 여기는 사람으로서 다루지 않을 수는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속마음을 남겨보려고 합니다.


반려견과 함께 사는 사람,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유기견'이라는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요.

반려견과 함께 사는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유기견이라는 말을 들으면 묘하게 외면하고픈 마음이 듭니다. 마치 지구를 위해 일회용 사용을 줄이며 자연을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외면하게 되는 것처럼. 사회적 문제를 들여다보는 우리들의 흔한 태도지요.

외면뿐만 아니에요. 생각보다 많은 반려인이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할 때 유기견을 입양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부채감을 가지고 있기도 해요. 유기견이라는 사회적 최약자를 가족으로 맞이하지 않고 품종견이나 어린 강아지를 가족으로 입양하고픈 마음에 그들을 외면한 과거로부터 온 부채감.

그렇다 보니 많은 반려인들은 특별한 동기가 있지 않은 이상 유기견 보호소에서의 봉사는커녕 단지 유기견 이슈에 대한 소식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꺼리게 됩니다.





유기견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기견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걸까요?

우리의 반려문화는 과도기에 접어들어 있습니다. 옛날 옛적부터 이어져온 개키움 문화, 개를 사랑하여 소유하게 된 애완견 문화, 개를 존중하며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복지 지향의 반려견 문화. 이 문화들이 한데 혼재해 있는 현시점을 살아가는 우리는, 동물권 문제와 개개인의 의견 대립으로 각자의 입장차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본인의 신념이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하며 타인의 입장과 사정을 짓밟고 무너뜨리려 드는 자들을 목도하고 있어요.

이런 현상은 급속한 반려문화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우리가 과도기를 넘어 더 성숙해지기 위해선 불가피한 하나의 현상으로 다가오지만, 이 시기에 속출하는 부정적인 문화적 양상과 그로 인해 겪지 않아도 될 죄책감에 시달리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반려인의 출현은 달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반려인들로 하여금 정말 혼란이 잦아들어 끝내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는 반려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마음속에 자리 잡게 합니다.


현시점 우리의 반려문화 속 분위기는 기묘합니다. 유기견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고,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유기견을 선택하지 않은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만이며 개인의 취향과 욕심으로 품종견을 반려견으로 들인 것은 부도덕한 행동이라며 몰상식한 자로 치부합니다. 왜 이런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까요?

저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7년째 현장봉사를 다니고 있고 반려견 교육자로서 재능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유기견 보호소에 현장봉사를 다니기 전의 저는 여느 반려인과 다르지 않게 유기견이라는 존재에 대해 일종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어요.

유기견은 아프며, 그들은 사랑을 갈구해 가족으로 맞이하려면 더 많은 사랑을 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문제행동으로 골치를 썩을 가능성이 높은 존재들이라는 고정관념이요.

제가 유기견에 대해 고정관념을 가지게 됐던 정보의 출처를 되짚어보니 이런 정보를 제게 전해준 건 불특정다수의 인터넷 속 댓글이었고, 또, 반려견 보호자라는 공통점으로 인연이 된 지인들이었어요. 그들은 유기견에 대해 연민을 가지곤 있지만 유기견 보호소를 가본 적은 없는 반려인이었지요.

다시 돌아와, 왜 우리의 반려문화에는 유기견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그럴싸한 이유가 있어야만 한다는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변명, 비난'으로 결론지었습니다.


우리의 반려문화 속에는 어찌 되었든 유기견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고, 설령 반려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길을 배회하는 떠돌이견의 존재, 유기견 보호소라는 존재, 그 센터에서 이루어지는 안락사라는 사건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접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이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유기견 문제를 인식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반려견을 가족으로 맞이하고픈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더군다나 그 수가 늘어나기까지 해요. 1인 가구가 늘면서, 비혼선언이 늘어나면서, 결혼 적령기가 밀리면서, 전염병에 의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늘면서.

이들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현명하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반려견 입양을 택합니다. 입양을 고민하며 사전에 정보를 찾아본 사람들은 유기견 문제가 우리 사회에 대두해 있음을 더 잘 알고 유기견 입양 사이트나 유기견 보호소를 들여다볼지도 모릅니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는 성격이 급한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도 맞춤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펫샵을 선택한 사람들은 언젠가 지나가다 우연히 본 적 있는 펫샵을 들러 카드 긁기 한 번으로 빠르게 새 가족을 맞이하게 됩니다.

유기견 입양 사이트나 보호소를 들여다본 사람들은 유기견을 입양할 수 있었을까요? 사전에 정보를 알아본 그들은 반려견과 함께 살며 겪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비해 입양을 신중히 하려 합니다. 그리고 십여 년을 훌쩍 넘게 함께 할 그들과의 앞날, 어린 시기 때부터 함께 하는 것이 더욱 특별할 거라는 생각에 선택은 더욱 신중해지고, 끝에는 펫샵이나 가정견 입양으로 눈을 돌려 입양할 수도 있겠지요. 이 과정에서 유기견 입양을 택하거나 떠돌이견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사람들의 수도 결코 적지 않을 겁니다. 파양견의 새로운 가족이 되어주겠다는 다짐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유기견이나 파양견, 떠돌이견 입양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바로 그 기묘한 분위기를 읽게 됩니다.

'유기견을 입양하지 않은 것에 이유를 대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이들이 사회적인 분위기에 맞부딪혀 유기견 입양 우월론자들에 저항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회적 질타와 같은 쓴소리는 그 목소리의 타당성을 떠나 개인의 사회적 위축을 유발하고, 이 위축은 우울증, 극단적인 사건사고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이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고, 두려움은 방어기제를 발휘하게 만들 겁니다.

"반려견이 아프면 어쩔 수 없이 금전적인 부담이 느는데, 유기견은 무리일 듯해서요."

"혼자 키울 건데, 더 큰 사랑을 줘야 할 유기견을 데려오기엔 오히려 걔네가 더 힘들어질까 봐서요."

"유기견을 데려왔다가 문제행동이 유별나면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서요."

방어기제는 그간 어렴풋이 접한 정보들을 변명으로 내뱉게 합니다. 그 정보들이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단지 당장의 사회적 질타와 죄책감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피하기 위한 재빠른 위기대처 능력을 발휘하면 그뿐인 거지요.

이들의 인터넷 속 댓글이나 지인을 통해 전해진 변명은 '반려견 가족을 맞이하기 위해 정보를 찾아보던 또 다른 예비 보호자'들에게 신선한 정보가 되어 날라집니다. '아! 유기견은 아플 수도 있고, 문제행동도 많고 더 큰 사랑을 줄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입양하는 게 좋은 거구나!'

이런 악순환이 발생하는 데에는 크게 2가지 현상이 작용하는 듯합니다.

하나는, 변명을 하게 만드는 '유기견 입양 우월론자의 횡포'이고,

둘은 유기견 입양 우월론자의 횡포에 생겨난 '횡포 피해자들의 변명 악순환'이에요.


사람은 누군가와 대립하여 입장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는 걸 어려워해요. 다른 사람과 의견을 대립하고 논쟁이나 언쟁을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진이 빠지고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 일이니까요. 더군다나 대부분의 횡포 피해자들은 '유기견 입양을 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채 기묘한 분위기를 맞이해요. 유기견 문제는 사회적 문제인 만큼 어찌 되었든 유기견 입양을 장려하는 메시지는 약자를 돕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입장이니 기묘한 분위기와 유기견 입양 우월론자들의 횡포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유기견 입양을 택하지 않은 자들은 위축되어 그저 방어적인 변명만을 내뱉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지요.





유기견 입양은 분명 현명한 선택이지만 유기견을 입양하지 않은 것이 현명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도 없어요. 사회는, 특히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즐비해 있는 논쟁의 장에서는 문제를 이분법적인 접근으로만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A가 옳으면 B는 그른 것이라는 접근이지요. 유기견 입양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이분법적 접근으로만 바라보고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조금만 고민해보면 유기견 입양 우월론자의 횡포에 이런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거예요.


- 개인의 유기견에 대한 정보 격차가 존재한다. 즉, 정보 격차가 있는 한 누군가는 몰라서 유기견 입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 유기견 미입양이 위법 행위가 아니므로 꾸짖을 수 없다.

- 유기견 입양처와 타 입양(분양) 처에 대한 접근성 차이가 존재한다. 타 입양처를 우연히 자주 접하는 동네에 사는 것만으로 유기견 입양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질 수 있다. 접하기 쉬운 입양처에서 입양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 세대/개인 간 동물 인지 감수성의 차이로 인해 누군가는 유기견이라는 문제를 축소하여 느낄 수 있다. '굳이 유기견 입양을 고려해야 해?'라는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극단적으로는 '나는 반려견을 유기한 적도 없는데 내가 왜 유기견을 입양해야 하나?'라는 반감을 가질 수 있고,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이는 타당하다고도 볼 수 있다.

- 유기견 문제는 개인의 입양에 의존하여 해결할 수 없다. 국가의 관심과 정책의 합리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문제다. 현실성 있는 정책이 충분히 유의미하게 실행되어 유기견 문제의 상당 범위가 해결되지 않는 한 무작정 유기견을 입양하지 않는 개인이 부채감이나 죄책감을 느끼게 둬서는 안 된다.


우리의 반려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과반을 훌쩍 넘는 반려인은 '비 유기견 입양자'일 겁니다. 그리고 이 '비 유기견 입양자'의 단 10%만 주변 지인에게, 인터넷의 글과 댓글에 유기견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사실처럼 변명하여 흔적을 남긴다면 그 흔적은 곧 10%의 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로써 전달되어버릴 겁니다.


유기견이 아닌 개를, 품종견을, 어린 강아지를 입양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개와 인류가 지구상 가장 친한 두 종이 된 건 '인류가 개라는 신기한 동물을 옆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되려 옛 개가 옛 인류를 택했다는 설이 정설이 되어 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형태로 발전하여 호모사피엔스가 현대 인류에 이르렀다는 흐름이 설득력 있지요. 현대에는 개라는 존재가 인류에게 주는 이점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위협을 알리는 경비원 역할, 위협을 함께 맞서주는 동료의 역할은 하지 못할지언정 지친 내 마음을 달래주고, 집요하게 나를 운동시켜 주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을 주는 게 현대의 개인 반려견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가장 큰 이점이에요. 이 이점은 개개인마다 느끼게 되는 지점과 이점의 효율이 극대화되는 지점이 다를 수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지점은 반려견의 외모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존중받아 마땅한 개개인의 차이일 뿐이에요. 부정할 필요도, 논쟁할 필요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 뿐이에요. 저 또한 한때 미래의 또 다른 반려견을 셔틀랜드 쉽독이라는 멋있는 견종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일종의 로망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로망견이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과도기의 대한민국 반려인이라면 이제는 나의 선택과 행동이 누군가의 선택에도 똑같은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직시하여야 해요. 선택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선택이 되고, 행동이 그 선택을 부추기는 떠밀기가 될 수 있어요. 나의 한 마디가 공장번식과 같은 부도덕의 극치 행위에 힘을 실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당장 부채감과 죄책감을 떨쳐내며 당당해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하지만 꾸역꾸역 내뱉은 변명이 아닌 현실을 받아들인 여러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유기견 입양 우월론자들의 힘을 약하게 만들 것이고, 여러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쌓이게 된다면 우리 주변의 이웃들의, 세상 사람들의 유기견 관심에 대한 흐름을 뒤바꿔놓게 될 거라 확신합니다.






아이러니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를 몇 년이나 했다는 사람이 왜 유기견 입양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옹호하지?"

냉정하게 말한다면, 유기견 입양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 비 유기견 입양이 비난받을 선택이 아니라 믿기 때문이고, 그것이 비 유기견 입양이 비난할 일이 아님을 알리는 것이 변명과 비난의 고리를 끊어 세상 사람들이 유기견을 제대로 바라보고 올바른 정보를 접하게 만든다면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유기견에 관심을 가져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기견이 다른 입양처의 반려견들보다 아픈 아이들이 아니며, 펫샵이나 가정견에 비해 문제행동 발생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더 큰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늘 처음 본 봉사자의 손길에라도 한 번 닿아보려 짖고 발버둥 쳐보는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유기견들 중에는 아픈 아이들이 있습니다. 문제행동을 가진 유기견도 있고 어쩌면 정말 더 큰 사랑을 받아야 하는 유기견도 있을 겁니다. 이 아이들의 입양,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많은 관심과 손길이 보호소로 향해야 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 가정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 관심과 손길이 마냥 아픈 아이들에게만 가지 않아도 좋고, 문제행동이 있어서 입양을 갈 수 있을지 걱정되는 아이들에게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더 큰 사랑을 주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손길을 내밀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누가 선택되어도 좋으니 보호소에서 세상을 바꿔줄 가족을 기다리는 세상 곳곳의 유기견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손길이 내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유기견 입양을 주제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재능봉사를 하던 한 날, 봉사를 다니는 보호소의 관리자님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쁜 아이들 없냐며 보호소를 둘러보러 온 분들을 보면 저도 사람인지라 아니꼽게 보게 되는 마음이 있어요. 정말 말 그대로 예쁜 외모를 가진 유기견을 보러 온 거거든요. 하지만 결국 그런 분들이 예쁜 아이들이라도 가정으로 데려가는 게 여기 있는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일이 되리란 걸 아니 다시 길에 내버릴 분들만 아니라면 보호소에 많은 분들이 와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글을 읽고도 여전히 비 유기견 입양으로 유기견들에 대해 부채감이나 죄책감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그 마음을 유기견 보호소 현장봉사를 실천하는 것으로 마주해 보는 건 어떨까요? 뜬소문, 전해 들은 말들로 유기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을 느껴보고 만져보고 경험해 본다면 더 사실적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의 친구에게, 지인에게, 이웃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작가의 이전글반려견이 배우는 방식, 반려견을 가르치는 요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