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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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부터 업무 몰입중입니다. 모 기업에 워크숍 기획서를 전달해야 해서 서두르는 중인데, 써야 할 내용도 다 있고 시작만 하면 되는데, 그 시작이 안되고 있어요. 시작이 안 될때는 나의 마인드님이 뭔가 걸려 하는게 있다는 거라는 걸, 저는 오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 걸림돌이 무엇인지, 그걸 찾아내면 다음 일이 술술 풀리죠. 그래서 이렇게 글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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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 나의 마인드!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뭐가 마음에 걸리는데
마인드: 글쎄. 잘 모르겠는데, 뭔가가 있어.
은주: 그니까. 그 뭔가가 뭐냐고 도대체!!!!
마인드: 화내는 건 아니지? 매우 화가 나 있는 건 같다 ㅠㅠ
은주: (화를 좀 누르러뜨리고, 상냥한 말투로) 무슨 소리야. 궁금해서 그래!!
마인드: 나도 알면 금방 말해줄텐데, 잠깐 기다려봐. 1분만 생각을 해볼게.
은주: 알았어! 천천히 생각해봐
마인드: (1분 후) 정보가 부족해. 좋은 기획서를 쓰려면 어떤 목적으로 왜 교육을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있어야는데, 그 정보가 모호해. 근데 이유는 있어. 그들도 아직 제안 단계라서, 어느 정도 구체화된 이후에 세부 방향을 논의하고 싶은 거지.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디테일 이야기까지 하고 싶은 거지. 그런 마음은 어디서 나온 거냐면, 맞춤 워크숍 위주로 하던 습관이 있어서 개요 제안서가 부족해보여. 하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 컨펌을 받기 위한 기획서에 디테일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어. 그렇게 들어가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지금 사고방식이 잘못된 거 같아.
우선은 이 교육의 목적이 뭔지, 왜 하는지, 어떤 기대효과가 있는지, 커리큘럼은 대략 어떠한지, 그래서 뭐가 바뀌는지, 왜 우리 회사를 선택해야 하는지, 레퍼런스는 어떤지, 차별화 포인트는 뭔지 등 전반적인 내용이 정리되어야 해. 꼭 예쁘게 만들 필요도 없고, 과장할 필요도 없고, 있는 그대로 쓰면 되니까. 이렇게 하면 부담감이 없지 않을까 싶은데, 이런 정도의 제안은 흥이 나는 일은 아니라서.
은주: 왜 흥이 나지 않는거지? 이해가 잘 안되는데
마인드: 나는 타고 나기를,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을 들때 가장 큰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아. -같아, 라는 모호한 말을 쓰는 건 나도 증명할 방법은 없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개요를 작성하는 제안은 개요라서...
은주: 잠깐만 말을 끊어서 미안한데, 좀 이상하다! 그런 이야기를 제안서에 쓰면 되잖아?
마인드: 나도 방금 말하면서 이상하다고 느꼈어. 그런 이야기를 쓰면 되겠다. 에세이를 붙일 수는 없지만, 왜 필요한지와 차별화 부분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자세하게 쓰면 되겠지. 하지만 나는 알아. 기업에서 강사의 이런 마음은 +알파 정도라는 건, 어떤 기업들은 프로페셔널하게 보지 않을수도 있어. 이런 말을 쓰는 내가 비굴해보일때도 있어서
은주: 안 써도 되는 것 아닐까?
마인드: 그렇지. 그게 정답이야. 쓰긴 쓰는데 다 써놓고 보낼때는 파워포인트에서 살짝 빼는 거지.
은주: 왜 자꾸 거기에 집착하는 거야?
마인드: 왜냐고? 생각해볼게. 왜 그런지! 1분만 줘봐.
-1분 명상후 -
마인드: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서 그런가? 도움을 잘 주고 싶어서 그런가? 누군가는 이런 마음을 자꾸 표현하는 것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일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럴 수도 있어.
애착이 가는 마음을 자꾸 표현하는 건 가족, 친구에게 하면 되고, 일과 일로 만나는 자리에서는 객관적인 게 서로 편하고 심플하긴 해. 나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보낸 끈적끈적한 기획서를 보면 오글거릴것 같아.
은주: 이게 정리가 된거야? 그러면 시작을 해야겠지.
마인드: 마음이 홀가분하군. 이런 군더더기를 싹 빼고, 깔끔하고 프로페셔널한 기획서를 완성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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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결과라도 한바퀴 생각을 돌리고 나면 홀가분해질 때가 있어요. 모든 걸 고려하고 최적의 결과를 선택했습니다. (이것도 완벽주의인가! 소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