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역에서 걸어서 10분거리에 잠산 작가의 작업실에서 잠산 작가를 만났다. 잠산 작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1:1 어드바이스를 시작한다는 현재형 글에, 나는 실시간으로 댓글을 남겼고 오늘 면담을 하기로 한 날이다.
"그림코칭 받기"
그림을 전공하지 않고, 배워본적이 없는 나는 인터넷으로 무작위로 배운 탓에 한번씩 크게 막히면, 며칠씩 제자리를 맴돌곤 했고, 그럴 때마다 1:1 코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미술학원을 다니는 친구의 추천으로 간 학원에서 화분을 하나 던져주고, 그려보라고 했는데 '내 스타일대로 그려야 할지', '미술시간처럼 그려야 할지' 답답하기만 해서 그날로 환불을 받아버리곤 그 뒤로는 미술학원 다닐 엄두가 안 났다. 어른이 되어서, 비난도 칭찬도 받지 않고 그림을 배운다는 게 가능할까? 의문점이 늘 있었고, 수준급으로 그림을 그려서 어디에 써먹냐며 쓸모를 고민하다보면 결국, 안 하는 선택으로 기울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코칭을 받아야 겠다고 마음을 굳힌 건, 제작년부터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제작하는 일러스트 모션그래픽 프로젝트를 프리랜서 겸 외주대행사로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0편의 작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왔다. 하지만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욕심. 아니 그 이상의 욕망이 온 몸에 퍼져버린 후로는 그림코칭, 그림코칭!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 누구에게 그림코칭을 받아야 할까?
어른인데, 미술학과 지망생과 미술학원에서 경쟁하며 배우긴 싫다.
기초 배우다가 나가 떨어질 확률'이 99.999% 이상이니까.
그러면 누구에게 그림코칭을 받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던 참에 잠산 작가의 1:1 어드바이스 글은 나에게 한조각의 빛이었다.
'그래, 잠산 작가에 그림코칭을 받자.'
기업쪽 프로젝트를 많이 하신 작가님이면서, 개인작업도 꾸준히 하시고. 업력이 25년이고 친구의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한번 뵈었었는데 수다를 좋아하시는 분이셨다. 말과 글을 좋아하는 작가라면, 단지 그림만으로만 소통하는게 아닌 말과 글로도 소통이 잘 될 것이다! 라고 의미부여까지 하니 마구마구 의지가 불솟는다.
'그림 코칭으로 업글인간이 되어보자'
2. 어떻게 그림코칭을 받아야 할까?
잠산 작가는 수업 전에 면담을 하자고 먼저 제안을 주셨다. 처음 가보는 현직 작가의 작업실. 작업실 가운데 공간을 터놓고 벽면에는 그림들이 걸려있고 (작가님 작품이다) 한면에는 닫힌 공간이 있다(작가님 작업공간). 한쪽벽면에는 긴 테이블과 8개의 의자(그림 수업이 진행될 공간이라고 했다). 다른 한쪽에는 작은 소파가 놓여있었다. 그 외에도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모이면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작가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도, 나에겐 영광이다. 작가님들과의 대화는 또 다른 세계일것이다. 이런 저런 기대감을 안고 대화를 시작했다. 먼저 이것저것 물어보려하시길래 대뜸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었다. 작가님은 '바로 이야기하나요?'라며 멋적어 하시더니 나 이외에도 여러명 접수를 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내가 그린 그림들을 보여드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 멀미소녀 동화책 완성하기
- 브랜디드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일러스트 그리기 (인물/배경/상황 이런 것들을 그리는 것)
- 사물 그림 에세이
이날 가져간 그림들은 이렇게 세가지였다.
당장 급한 건 브랜디드 영상 컨텐츠에 들어갈 인물/배경/상황들을 디지털 드로잉으로 잘 그려내는 것!
작가님은 내게 물었다.
"그러면 캐릭터 이런걸 잡아줘야 되나요?"라고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그건 제가 하면 되고요. 제 스타일대로 살려내야 하니까. 이것을 제가 완성하려고 한다고만 생각하시고 기초수업을 해두시면 돼요"
작가님도 그게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작가님은 오늘 수업은 0회라고 했다.
이렇게 토요일마다 3시간씩 1:1 그래픽 어드바이스(작가님은 굳이 굳이 어드바이스라고 한다. 코칭이라는 단어는 부담스러운가보다)를 시작한다. 1:1로 받지만 그룹수업이다.
나도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됐다.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그림코칭을 받고 싶은지 말이다.
[내가 그림 코칭을 받고 업글하고 싶은 부분]
- 그래픽 레코딩/브랜디드 컨텐츠/그래픽 퍼실리테이션에 필요한
나만의 그림 스타일 잡기
남편에게 이제 토요일마다 외출을 할 것이니, 자유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자주 출퇴근을 같이 하고(회사가 같은 동네에 있어서) 평일에 남편이 휴가를 내면, 놀러다니고 하다보니 둘이 붙어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래서 나도 자유시간이 필요하고 남편도 그럴 거라고 (나혼자) 추측했다. (남편은 속으로 좋아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2021년 3월 27일 토요일 오후3시~6시
첫번째 그림코칭:
토요일 3시가 이렇게 이른 시간이었나? 어젯밤에 너무 늦게까지 넷플릭스 정주행을 했더니 오전은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부랴부랴 점심을 먹고 서둘렀고 10분전 도착했다. 그래도 커피는 놓칠수 없기에 작업실 1층에 있는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을 한잔 사들고 거의 3시에 3층 작업실 문을 열었다.
작가님은 젊은 남녀 두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반갑게 맞이할 틈도 없이 간단히 인사만 마치고 나까지 셋을 한 테이블에 앉혔다.
"오늘 세명이 첫 수업이예요. 한꺼번에 첫수업이면 조금 바쁘지만 우선 한명씩 따로 설명은 드릴게요"라고 하면서 이미 면담이 끝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각자 과제를 주었다.
나는 자화상을 한번 그려보라고 했다. 아이패드를 꺼내는데, 내 앞에 젊은 언니(20살, 여자는 호칭을 언니라고 할란다)도 아이패드를 꺼냈다. 우리는 서로 잠깐 인사를 나눴다. 누구냐, 왜 배우냐, 무슨 툴을 쓰냐 등등. 우리는 둘다 프로크리에이트를 쓰고 있었고, 둘다 멀뚱멀뚱 뭘 그려야지 하고 있었다. 나는 우선 핸드폰에 있는 내 사진들을 살펴보았고, 그 중 하나를 꺼내놓고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그림은 혼자 그리는 거다. 막막함은 그리면서 이겨내는 것이다. 라고 다짐하면서 그렸다.
'어떻게 그려야 할지, 잘 그려야 할지, 잘 그린다는 게 뭔지, 왜 자화상을 그리라고 했는지, 사진보고 그려도 되는지, 이렇게 간단한 선으로 그려도 되는지, 내 셀카는 왜 모두 똑같은지' 머리속은 난장판이다.
작가님은 작업실 한 켠에 있는 작은 방(이라 쓰고, 닫힌 공간이라 읽는다)에 젊은 남자(20대 중반, 이름을 알려줬는데 까먹음)를 데리고 들어갔다. 한명씩 오늘 수업에 필요한 설명을 해준다고 한다. 한 삼십분쯤 지났을 까, 작가님은 내 옆으로 오더니 2가지를 이야기했다. 1. 옷보다는 얼굴 표정에 주목할 것 2. 간단한 선으로 그릴 것.
원래 쓰던 아이패드 선을 쓰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점점 디테일을 표현하고 싶어서 가는 선으로 가고 있었다. 가는 선이 주는 디테일은 그림을 잘 그린 것처럼 보이게 할것 같아서 (순전히 개인적인 뇌피셜이다) 이다. 작가님은 아이펜슬을 가져가서 이런 저런 선들을 막 그려보더니 말했다.
"지금 쓰는 선은 손을 따라다니는 선이고 수채감이 있어서 이런 비즈니스 그림(이렇게 딱 단어를 쓴 건 아니지만, 내가 그리는 스타일의 그림을 의미한 단어였다. 기억 안남)으로는 적합하지 않아요. 딱 맞아떨어지는게 좋죠"
거기 있는 펜들을 이것저것 써보고 테스트를 한참 해보더니, "자, 이 펜으로 써보세요. 이게 좋아요"라고 하셨다. 간단히를 강조하고 옆 사람와 이야기를 하셨다.
칼라를 물어봤더니, 또 막 테스트를 해보더니 이 색이 좋겠다고 하면서 채도와 명도를 같게 하고, 칼라는 다르게 하면 전체적으로 통일성 있다고 했다. 칼라 파레트(원으로 된 것)를 찍어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어쨋든 수업 중에 나에게 준 그림코칭 가이드를 정리해보면
나는 비즈니스 그래픽을 추구하고 있다. 기업에서 사용할 거라서 공식적인 느낌/너무 아동틱하지 않을 것/잘 정리된 느낌. 이런 것들 추구하고 있다. 그 가정하에서 가이드를 주신 내용임을 인지하고 보자.
(왜냐면 아래 가이드들은 모든 그림에 적합한 건 아니다. 예를 들어서 굵은 선을 쓰라고 했는데, 굵은 선은 그래픽 퍼실리테이션 용으로는 좋지만, 모든 그림에 좋은 건 아니니까. )
녹색은 작가님 가이드 (가로안은 나의 생각이다)
1. 가는 선보다는 굵은 선으로 (굵은 선이 더 정돈되어 보인다. 정보처리가 우선인 그림에서는 굵은 선이 보다 효과적이다)
2. 두께가 달라지는 선보다는 두께가 똑같이 나오는 선으로(두께가 달라지는 붓느낌은 운치는 있을 수 있는데, 정리된 느낌은 덜하다. 아마도 내가 아직 초보라서 일수도 있다. 붓은 좀더 다루기 어려운 선이다. 인정인정)
3. 말랑말랑한 액성느낌보다는 딱딱한 물성으로 된 선 사용하기 (디지털 선에도 질감이 있다. 물감으로 그린 느낌 같은 질감, 마커로 그린 것 같은 질감, 볼펜으로 그린 것 같은 질감 등등. 그래서 디지털 드로잉에는 연필,잉크,서예 등 말랑말랑한 느낌은 잘 안 쓰는 것 같다////물론 물론 컨셉적으로 필요한 경우는 있다)
4. 디테일보다 우선해야 할 선은 큰 형태를 그리는 선(정확히 이렇게 표현한 건 아닌데, 이런 뉘앙스였다. 나는 자꾸 디테일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 잘 그리고 싶어서. 디테일이 있으면 그림이 잘 그려진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큰 형태가 엉망이면 의미 없다.)
5. 비즈니스용 그래픽은 단순한 선으로
질문과 답변
아래 그림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이렇게 그릴 수 있을까요?
작가님은 대답했다. 결국 사람을 그릴 수 있어야겠죠. 도안을 따라서 많이 그려봐요.
연습하기 방법
: 도안 책보고 따라 그리기
도안, 이란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면서, 책을 추천해주셨다. 근데 요즘은 그런 책이 대부분 절판이었다. 큰 서점에 가서 도안 그림을 찾되 투시 없고 어렵지 않은 책을 사라고 권해주셨다.
그림코칭 1회 소감 및 내 인생에 적용할 점
옆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 중 나에게도 꽂힌 가이드가 있다.
옆 사람은 소묘를 하고 있었는데, "디테일에 집중하지 말고 큰 것을 보세요"
작가님은 결론을 말씀해주신다.
이 선이 좋다, 이 정도 채도와 명도가 좋다!라고.
하지만 난 기준이 없다.
'왜 이 선이 좋다는 걸까? 왜 이 정도의 채도와 명도가 좋다는 걸까?'
그 답을 당장 찾겠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걷지도 못하는데 뛰겠다는 느낌이다. 이 선을 기준점으로 삼아 그려보고, 나만의 선을 찾아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