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커피를 마신 게 참 다행이야”
그 말 때문에 시작한 여행이었다. 그 때의 커피가 엄마의 지나온 35년 인생에 ‘다행'을 선물해줬다면 지금의 커피는 엄마의 ‘온전함’을 선물해주길 기대하면서.
어느 주말, 엄마와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한적한 카페에 앉아 여느 때처럼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따뜻한 라떼를 주문했다. 쓰디쓴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나와 달리 엄마는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다양한 커피를 즐긴다.
“엄마는 언제부터 커피를 좋아하게 됐어?”
“엄마가 말 안 했나? 너희 아빠가 엄마한테 커피 한 번 마시자고 계속 쫓아다녔잖아, 그 때까지 엄만 커피를 안 마셨거든. 그런데 몇 번을 커피마시자고 쫓아다니길래 한 번 같이 마셔줬지. 그게 아빠와 첫 데이트였어”
“와, 그럼 그 때가 아빠와도, 커피와도 처음이었던거네?”
“응, 아빠가 좋아지니 커피도 좋아졌나봐. 그 때 그 커피를 마신 게 참 다행이야”
부모님의 연애 얘기는 굳이 물어본 적이 없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듣는 것은 왠지 부끄러웠다. 그런데 엄마를 통해 35년 전의 이야기를 듣자니, 더 듣고싶어졌다. 이왕이면 커피와 함께.
그렇게 떠나게 된 강릉 여행. 마친 글오름 멤버 상수님께서 강릉 테라로사 커피공장으로 초대를 해주셨기에 그 일정에 맞춰 준비했다. 엄마와 하루 일찍 떠나 강릉을 돌아보고 함께 테라로사로 가는 여행에 엄마도 흔쾌히 응했다.
토요일 아침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오랜만의 여행에 엄마는 물론 나도 마음이 둥둥 떠다녔다.
“엄마는 아빠랑 첫 데이트 때 무슨 커피를 마셨어?”
“그 때 엄만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 잠깐 고향에 내려왔을 때거든, 너도 알다시피 엄마가 어릴 때 좀 세련됐었니? 새침하게 비엔나 커피를 마셨지”
“아빠 놀랐겠는 걸? 8살이나 어린 아가씨가 광주에서 그런 고급커피를 마시니”
“아니야, 그 때 아빤 아주 패기가 넘쳤어. 엄마를 너무 좋아했거든"
살짝 수줍어하는 모습이 내가 알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35년 전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두 청춘의 데이트 스토리를 듣자니 기분이 묘했다.
엄마와 한참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곳은 카페 보헤미안 영진이다.
강릉의 커피거리는 안목해변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사실 강릉을 커피도시로 만든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우리나라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씨라고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는 우연히 신문에서 봤다며 강릉에 가면 꼭 박이추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카페에 가고싶다고 하셨다.
이른 아침에 도착한 카페는 생각보다 한산했고 다행히 박이추 바리스타님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됐다.
1988년에 개업을 해 고스란히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카페는 입구부터 레트로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나무와 화분으로 꾸며져 사랑방 같은 느낌을 주는 카페는 마치 35년 전 부모님이 커피를 마셨을 카페를 연상케 했다. 로스팅룸의 박이추 바리스타를 발견한 엄마는 오길 잘 했다며 커피 주문을 서둘렀다. 이럴 땐 참 소녀같다 우리 엄마.
엄마에게 아빠와의 추억을 되살려 비엔나 커피를 마셔보는게 어떠냐고 추천했지만 엄마는 이곳까지 와서 비엔나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며 눈을 흘긴다.
결국 커피의 산미를 좋아하는 엄마는 파나마 게이샤를, 묵직한 쓴맛을 좋아하는 나는 인도 아라비카를 주문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기다렸다. 따뜻한 커피 향과 바다의 풍경, 그리고 로스팅룸에서 들리는 커피 내리는 소리까지 엄마와 나의 마음에 평온함이 퍼지는 듯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가 나왔다. 꽃 그림이 그려진 찻잔이 가지런히 우리 앞에 놓였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엄마를 바라봤다. 창으로 들어온 햇살에 얼굴 한 쪽이 밝게 빛난다.
“커피 어때?”
“여기 계산서에 쓰인 글귀 봤어? ‘난 언제나 향이 좋은 커피를 마시는 걸 잊지 않는다. 고귀한 불굴의 노력이 생겨난다. 만약 당신의 이해력이 둔해진다면 커피를 마시세요. 커피는 지적음료입니다’ 커피 한 모금에 내가 좀 더 지적여진 것 같아”
커피가 지적음료라니, 그리고 그 커피에 자신이 더 지적여진 것 같다니, 이 카페에 오길 잘 했다. 엄마의 말랑말랑한 감성을 불러일으킨 느낌이다.
사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종종 말이 없어지곤 했다. 가끔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엄마의 대답은 늘 비슷했다. “응, 커피 마시면서 그냥 앉아있어”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기에 그냥 또 커피를 마시는 중이구나 생각하고 넘어가곤 했다.
남들에게는 유난하다던 갱년기도 별 일 없이 넘어갔던 엄마였다. 약간의 우울감과 예민함을 보이긴 했지만 심각하다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환갑을 맞은 엄마는 갑자기 말수가 적어지고 깊은 생각에 혼자 빠져들곤 했다. 오늘처럼 내가 말을 걸고 장난을 치면 아무 일 없던 듯 받아주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의 엄만 자기만의 세계에 빠지는 듯 했다.
그래서 한참을 아무 말 하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엄마에게도, 나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순간이라 느꼈다.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듯이, 오롯이 커피를 즐기며 마음을 정돈하는 시간.
정적을 깬 건 엄마였다.
“만약 그 때 엄마가 아빠와 커피를 마시지 않았더라면 아빠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어. 그 순간의 선택이 나를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또 예쁜 딸과 아들의 엄마로 살게 한 거겠지라고 말이야. 그것만으로 엄마는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엄마에게 다행은 무슨 의미야?”
“행복이지, 그때가 없었다면 이렇게 딸과 커피를 마시는 시간도 없었잖아.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둘, 딸과 커피”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나는 늘 엄마를 보면 애틋함의 감정이 먼저였다. 사업을 하는 아빠를 돕고 두 아이를 길러내느라 젊은 시절을 다 보낸 엄마였다. 결혼 전 엄마는 전공을 살려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결혼 후에는 늘 집을 커피 향과 빵 굽는 향으로 가득채웠고 언젠가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결국 환갑이 된 올해까지 엄마는 그 모든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랬기에 엄마의 인생이 다행이라는 말은 나에게 의외였다.
‘다행, 다행, 다행..’ 나는 머릿속으로 그 단어를 되뇌었다.
커피를 마신 후, 영진해변으로 나갔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장으로도 유명한 영진해변은 1월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겨울 바다를 보기는 오랜만이었다. 엄마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영상도 촬영했다.
언젠가부터 엄마의 영상을 많이 찍게 된다. 별 말을 하지않아도, 특별한 일이 없어도, 그냥 엄마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내고 싶었다.
짧게 해변을 둘러본 후 우리의 숙소가 있는 임해 자연휴양림으로 향했다. 임해 자연휴양림은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조용한 휴양림으로, 해돋이 전망대로도 유명하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해맞이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천천히 걸으며 산책로의 나무 냄새를 맡았다. 엄마도 나도 이런 자연을 참 좋아한다. 아빠와 똑 닮은 내가 엄마를 닮은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산책로 나무사이로 안인해변이 보였다. 걸음을 멈춰 가만히 바다를 내려다보는 엄마는 또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 듯 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엄마 요즘 혼자 무슨 생각 해? 가끔 엄마 보면 혼자 멍하니 있는 것 같아서, 혹시 무슨 일 있는건 아닐까 걱정도 되구”
“우리 딸 언제 엄마를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어?”
엄마는 짐짓 놀란 듯 했지만 오히려 알아봐준 딸이 고맙다는 듯 바라봤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습관처럼 하는 게 하나 있었어, 잠들기 전 그 날의 우리 가족의 모습을 눈에 담고 사진 찍듯 마음에 찍어두는 것, 그리고 그 다음을 계획하는 것.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게 하면서 내일의, 다음 달의, 내년의 우리 가족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게 참 즐거웠거든"
잠시 말을 멈춘 엄마는 다시 산책로를 걸어 내려갔다. 곧바로 엄마를 따라가며 팔짱을 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다음을 계획하는 게 어려워지더라구. 너도, 네 동생도 각자 너희만의 사회 속에서 잘 살아내고 있고, 아빠는 이제 사업도 자리잡아 안정적으로 일하고 계시구. 내가 우리 가족의 다음을 위해 무얼 해야할까, 아니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예상치 못한 엄마의 말에 섣불리 반응할 수 없었다. 쉽게 내뱉은 말이 엄마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책로를 다 내려오는 동안 우리 사이엔 정적만이 흘렀다.
간단히 저녁을 먹은 우린 내일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잠을 자기로 했다. 불을 끄고 누워 엄마와 나의 내일이 아득함이 아닌 조금은 선명한 내일이 되길 기도하며 잠을 청했다.
알람소리에 깨어나보니 엄마는 이미 일어나 계셨다. 주방엔 커피향이 가득했다. 엄마는 평소 자주 가는 카페의 드립백을 꺼내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엄마 벌써 일어났어?”
“응, 잠이 잘 안 오네. 커피로 몸 데우고 나가자, 얼른 와”
엄마와 창 밖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빈속에 마시는 커피는 위장에 알싸함을 전해줘 금방 잠을 깨웠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커피를 한 모금 정도 남긴 나와 엄마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숙소에서 조금 걸어 나오니 정자 모양의 일출 전망대가 보였다. 엄마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전망대에 올랐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진을 찍고있다.
“엄마, 사진 찍어줄까?”
“아니, 우리 눈으로만 보자”
엄마와 난 소란스러운 사람들 틈에 조용히 일출을 바라봤다. 주황빛 해가 조금씩 떠오르더니 순식간에 동그란 몸체를 드러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끼며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어제 잠들기 전 무엇을 눈에 담고 마음에 찍어뒀을까, 그리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문득 얼마 전 본 책의 구절이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 해는 완전히 떠올라 밝은 아침이 됐다. 눈부신 해를 보고있자니 나른함이 몰려왔다.
“엄마, 가자”
엄마의 손을 잡고 끌었다. 어제 엄마의 말에 하고싶은 말이 생겨 마음이 조급했다. 엄마 손을 잡고 전망대를 내려오며 말했다.
“엄마, 내가 얼마 전에 재밌게 본 책이 있는데 엄마한테 꼭 들려주고싶은 구절이 있었어. 들어볼래?”
“그래? 궁금하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번아웃되지 않고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거리며 간 보기, 준최선으로 비벼보기, 멀리 봤을 때, 최선보다 준최선이 가성비가 더 좋을지도 모른다’” *
“음, 준최선, 흥미로운 단어네”
“내가 35년을 본 엄마의 인생은 ‘최선’이라는 단어 외에 더 표현할 단어가 없을만큼 최선을 다한 인생이었어.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지금 당장 주어진 일과 의무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거, 그거 정말 힘들다는걸 나도 요즘 조금, 아주 조금 알겠더라구”
고개를 돌려 엄마와 눈을 맞췄다.
“엄마 이제 앞으로는 우리 준최선으로 살아보자. 내 자식, 내 남편, 내 가정을 위해서는 이제 준최선으로 비벼보는거야. 그리고 엄마만을 위한 생각의 틈을 줘보는 건 어때? 엄마가 그렇게 산다면 난 정말 행복할 것 같아. 이 말이 하고 싶었어”
“우리 딸 다 컸네, 준최선으로 산다는 게 아직은 어떻게 사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단어다. 엄만 최선 직전에서 어슬렁거리며 간본다는 말이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 오늘부터 한 번 해볼까?”
엄마가 나를 보며 웃었다. 괜히 눈이 찡그려진다. 그리고 앞을 보고 외쳤다.
“우리 오늘 가성비 좋은 하루를 보내볼까?”
* [준최선의 롱런] 문보영
* 에세이인듯 소설인듯 가상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