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예술극장을 열어준 시민예술가들의 시간이 서울을 빛내다
기억에 남는 시민참여 문화기획 프로젝트를 꼽으라면 단연 <열린예술극장>이다.
시민이 만들고 시민이 즐기는 예술공간. 서울시 25개 자치구, 55곳의 야외무대에서 82팀의 전문 아티스트와 아마추어 공연팀이 참여해 매주 주말마다 연간 900회 이상의 공연이 펼쳐졌다.
설명만 들으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프로젝트 같지만,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고난이도의 연속이었다. 입찰과 선정을 진행하는 연초와 폭염, 한파 기간을 제외하면 1년에 약 40주. 이 중 주당 20회 이상의 공연이 서울 곳곳에서 동시에 열리는 셈이다. 말 그대로 서울 전역이 하나의 예술무대가 되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많지만, 그중 하나는 82개 팀을 선정하기 위한 오디션이었다. 100여 팀의 공연팀이 2일간 문화역서울 284에서 오디션을 진행했는데, 팀 규모는 1명부터 150명까지, 장르는 통기타, 가야금, 댄스, 브라스밴드, 태권도 퍼포먼스, 서커스, 마술, 연극까지 다양했다. 단순히 시간표만 짜는 일이 아니었다. 마이크와 음향, 조명, 보면대와 의자까지 모든 요소가 실연 가능하도록 협의하고 조율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역대급 난이도의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다. 전문성을 갖춘 공연팀뿐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을 타인에게 전하고자 용기 내어 무대에 서려는 시민들도 함께했다는 점이다.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있다.
수많은 대형 공연팀 사이, 홀로 무대에 오른 한 시민. 텅 빈 무대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손에 맺힌 땀을 연신 옷으로 닦아내며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심호흡을 깊게 한 뒤 조심스레 연주를 시작했지만 손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렸고, 음정도 흔들렸다. 보는 이들 모두의 마음이 조용히 떨리는 순간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그해 공연팀으로 선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다시 오디션에 참여했고 한층 성장한 기량으로 마침내 <열린예술극장> 공연팀으로 선정되었다. 직접 공연을 보러 간 날, 관객은 많지 않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의 연주를 해냈고, 관객들은 따뜻한 박수로 화답했다. 연주 후 그에게 정말 좋았다고 인사를 건넸더니,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미소가 아직도 선하다.
사람들은 종종 예술가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악기나 퍼포먼스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용기, 그만의 Unique함 하나면 누구든 무대에 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예술극장>은 시민이 예술가가 되는 가장 아름다운 무대였다.
지금도 상상해본다. 그 예술가는 아마도 그날의 경험을 토대로, 어딘가에서 또 다른 무대 위에 서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