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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환승길, 음악이 건넨 위로

by 원웨이브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문화기획 일, 힘들지 않아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어요?"






이 질문에 떠오른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오늘은 그 중 하나를 이야기하려 한다.



문화기획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회사에서 이벤트 행사에 공연을 배급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고속터미널 역사 내 기아자동차 홍보관에서 신차 출시에 맞춰 시민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담당자와 함께 기획했다. 지하철을 타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깜짝 미니 콘서트로 공연을 선물하는 일이었다.


여러 날에 걸쳐 다양한 공연팀들이 멋진 무대를 꾸몄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팀은 여성 4인조 어쿠스틱 밴드 <바람에 오르다>였다. 보컬, 건반, 콘트라베이스, 첼로로 구성된 따뜻한 음색의 팀이었고, 준비 과정에서 음악만 들어봤던 나는 리허설에서 처음으로 이들의 무대를 직접 보았다. 실력도 좋았고, 무엇보다 음악이 편안하고 마음을 어루만졌다.


행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관객수는 중요한 지표다. 현장사진에 관객이 풍성하게 나오는 것이 중요했고, 객석을 만들어뒀다면 빈자리가 없도록 해야 했다. 하지만 지하철은 공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목적지로 향하느라 공연을 멈춰 서서 보지 않는다. 그래서 공연 초반, 객석은 한산했다.


때로는 진행요원들이 객석을 메우기도 한다. 나 역시 잠시 빈좌리에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어두운 표정의 한 여성이 무거운 걸음을 끌고 와 내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한겨울임에도 늘어진 티셔츠에 츄리닝바지를 입고 있었고, 손엔 무언인가 소중한 것이 담긴 듯한 검은 비닐봉지를 꼭 쥐고 있었다. 차림새와 표정이 평범하지 않아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운영자이기에 주변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있었다.



몇 곡이 지나자 그녀의 어깨가 떨렸다. 옆에서 살짝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어색한 정적이 흐른 후, 그녀는 감정을 추스리곤 무대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말했다.


"사실 요즘 안 좋은 일들이 겹쳐 너무 힘들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문제들이 몰려와 저를 삼킬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정말 나쁜 마음까지 들었었죠.."


"그런데 우연히 이 음악을 듣고 위로를 받았어요.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 뒤 나는 챙겨야 할 일이 있어 자리를 벗어났다. 어느새 가득찬 객석 사이에서 그녀는 조용히 공연을 끝까지 보고, 빛나는 눈으로 박수를 친 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그 일이 벌써 10년도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시 기업 담당자와 티격태격하며 어렵게 준비했던 공연이었다. 그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내게도 벅찬 시기였다. 그런데 그녀의 말이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어쩌면 그날의 그 반응이 지금가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힘들지만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기쁜이 되고, 삶의 작은 불빛이 되는 순간들. 그 순간을 선사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감사로 남는다.


음악, 특히 라이브음악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장소가 어디든, 무대가 크건 작건, 어떤 조건이든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순간은 분명 존재한다. 우연처럼 찾아오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순간들.


그날의 공연이 내게 그러했듯, 나의 일은 그렇게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었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나의 Unique함을 증명해주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때 공연에서 들었던 이 노래를, 나는 지금도 가끔 듣는다. 들을 때마다 그날의 그 감동이 전해진다.


바람에 오르다 - <바람에 오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zvqs13jQHQ&list=RDtzvqs13jQHQ&start_radi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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