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서울페스티벌 '열두띠의 우아한 난장'
오늘은 오랜 시간 문화기획 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이야기하려 한다.
예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나 또한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시민참여를 위해 영업하게 된 첫 경험이자, 나에게 깊은 울림을 준 프로젝트였다.
당시 하이서울페스티벌 기획팀에서 다양한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그중 하나가 '열두띠의 우아한 난장'이었다. 연출 의도는 멋졌지만, 실행은 쉽지 않았다. 열두띠를 상징하는 12개 단체가 서울 도심의 12방향에서 출발해 시청으로 모이는 퍼레이드를 하고, 시청 앞에서 난장 공연으로 마무리하는 구성이었다.
각 단체는 의상과 도구의 일부를 직접 제작하고, 퍼레이드와 퍼포먼스를 위해 워크숍에 참여했다. 초반 기획부터 모집, 워크숍, 공연까지 챙길 일이 많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어려웠다.
특히 참가단체 모집이 가장 힘들었다. 연출자는 다양한 연령과 환경의 사람들로 10명 이상 구성된 단체를 원했다. 공연 참여와 워크숍까지 소화할 수 있는 의지 있는 단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직접 PPT를 만들어 시민참여 영업을 시작했다. 학교나 대형 단체를 통한 동원이 아니라, 하나하나 직접 찾아가 설득하고 협의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발달장애 아이들이 있는 학교를 만나게 됐다.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있었지만, 초·중·고 학생 10명 정도가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 관심은 있지만 경계심에 움츠러든 모습이 보였다. 특히 교실 한 구석에서 선생님 옆에만 붙어 있던 아이의 불안한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연출자와 스태프들의 노력 덕분에 워크숍이 무사히 진행됐다. 축제 당일, 12곳에서 출발한 퍼레이드는 다양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시청 앞 난장 공연으로 멋지게 마무리됐다.
축제 후, 해당 단체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들은 이야기가 가슴을 울렸다. 처음에는 가능할지 의구심이 컸지만, 아이들이 조금씩 웃고 기대하며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번 축제에 참여하면서 아이들에게 그 과정을 일기로 써보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어렵다", "모르겠다" "하기 싫다" 이런 내용들이 주로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재미있다" "기대된다" "힘이 난다"와 같은 말들이 일기에 적혀 있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평소에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아이가 있었어요."
(워크숍 첫 날, 선생님 옆에 꼭 붙어 있던 아이였다.)
"그 아이는 첫 날부터 마지막까지 제 옆에 꼭 붙어서 한 마디 없이 조용조용 함께 참여했어요."
"마지막 축제가 끝나고 다들 만족하며 "신난다" "잘했다" 할 때까지도요."
"그런데 축제가 끝나고 몇 일 뒤인가, 그 아이가 조심스레 한 마디 했어요."
"선생님, 연습 또 안 해요?"
그 말에 선생님은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고 했다. 이후 아이들은 한층 활력이 생겼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다른 감사 인사들과는 다른 울림이었다. 이 경험은 훗날 평창 패럴림픽으로 이어졌지만, 그 시작점이자 나에게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
무대에 오른 아이들의 눈빛,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리고 그 과정을 함께 만든 사람들 덕분에 이 일이 참 좋다고, 다시 한 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