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착 사이
5월 22일부터 4개월간 '매주 일요일'마다 브런치를 써왔다. 바쁜 일이 있어도 어떻게든 시간을 마련해 '단 한주도 빠짐없이' 일요일 아침에 홀로 카페에 앉아 글을 썼다.
그런데 그 풍요로운 일요일이
지난주에 단 한 번 멈췄다
https://brunch.co.kr/@uniquelife/29
예전에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영화를 보곤 영화에 나온 배우나 내용보다 그 제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세상은 우리에게 냉정이나 열정 중 한 가지를 강요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화의 제목처럼 너무 냉정하지도 너무 열정적이지도 않은 중간 지점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처음에는 온전히 나의 선택으로 시작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늘 일기를 쓰고 항상 메모를 좋아하던 내가 혼자 써오던 글을 브런치로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요일 오전에 스스로 만들어가는 여유로운 시간이 삶에 큰 활력을 주었다. 주말에도 가족여행이나 회의, 일 등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만 매주 나의 선택은 브런치였다.
하지만 3~4달이 지나고 다양한 일정에 치여 피로도가 쌓일 즈음부터 즐거웠던 선택은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평일 내내 바삐 움직이고 일요일마저 스케줄이 그득한데 아침 8시에 카페를 가서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아마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도 한가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바쁜 일정에서 소중한 것과의 선택에서 브런치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부담으로 이어지고, 그 부담은 어느 순간부터 집착으로 나아간 것 같다. 하기로 했으니 꼭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그러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워갔다.
너무 강하게 이끌리면 부딪치기도 쉽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는 이루어질 수 없다.
-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중
영화의 대사처럼 나는 너무 강하게 브런치에 이끌렸는지도 모른다. 부족한 글에 공감해주시고 함께 생각을 나누는 작가님들 덕분에 글 쓰는 것이 행복했지만 그만큼 그 호감은 강하게 나를 이끌어 집착으로까지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이러한 선택과 집착의 중간 지점이 나에게 필요한 것 같다.
결국 브런치의 글이 멈추고
멈춤의 기간이 늘어간다면,
이는 글을 쓰는 스스로의 즐거운 선택이
꼭 해야 하는 숙제처럼 여겨지는 집착으로
나아갔기 때문 아닐까?
고대 세계의 학문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학문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중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두려움과 자신감의 중용은 용기이다. ... 자신감이 지나친 사람은 무모하고, 두려움이 지나치고 자신감이 모자란 사람은 겁쟁이이다. 쾌락과 고통에 관련해서는 중용은 절제이며, 지나침은 방종이다. 쾌락과 관련하여 모자란 사람은 흔치 않아 명칭도 없지만, 그들은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 지나침과 모자람이라는 두 악덕 사이의 중용이며, 중용은 감정과 행위에서 중간을 겨냥하기 때문에 그런 성질을 갖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숨, 천병희 옮김, p76, 82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하는 중용은 양 극단의 산술적인 중간이 아니다.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은 중간 지점인데 그것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며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에게 맞는' 중용을 끊임없이 찾아야 하며 그 지점을 찾기 위해서는 양 극단을 경험해야 하는 것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가 어려우며, 매사에 중간을 찾아내기란 어렵다. ... 우리는 때로는 지나침 쪽으로 때로는 모자람 쪽으로 치우쳐봐야 한다. 그래야만 가장 쉽게 중용을 지키고 좋은 것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숨, 천병희 옮김, p82, 84-85
그래서 브런치를 매주 일요일에 쓰고 그것이 멈춰졌을 때 나는 선택과 집착의 양 측을 느꼈고 그 중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지점이 내가 앞으로도 꾸준히, 그리고 즐겁게 선택해 나가며 나아갈 수 있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사실 무언가를 계획하고는 단 한 번의 실패는 완전한 실패로 이어지곤 하다. 하지만 그 실패의 지점에 내가 무언가를 너무 지나치거나 너무 모자라게 생각하거나 행동하고 있는 건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해온 일요일 아침의 글쓰기가 멈추곤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래! 글쓰기가 멈춘 이유와 생각에 대한 글을 써보자!"였다. 다행히 그렇게 생각이 떠오르는 것 보니 집착보다는 현재의 나에게 브런치는 선택에 가까운 것 같다.
선택과 집착의 중간은 즐거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