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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웨이브 Dec 18. 2022

대학원의 끝에서 시작된 느린 공부

대학원을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며칠 전 졸업보고서에 교수님들의 도장을 받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러 대학원 석사과정을 이제는 졸업하게 된다. 나에게 대학원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 시간이 지나고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들을 남겨보고자 한다. 


대학원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대학원 석사를 졸업한다. 



  나는 전문대학원 석사를 졸업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법에서는 전문대학원이란 '전문 직업분야의 인력양성에 필요한 실천적 이론의 적용과 연구개발을 주된 교육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함께한 원우들은 다들 해당분야에 경력자이거나 경력을 새로이 만드는 사람들이다. 일과 병행하며 바쁜 시간을 쪼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대학원 유형 (출처:전국대학원 홈페이지)


  내가 대학원을 간 이유는 공부를 해보고 싶어서였다. 대학원을 시작하면서 쓴 메모들을 찾아보니 "나에게 중요한 것들에 대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나의 사고와 언어로 정리하며 그에 대한 가치관을 구축해나가고 싶다."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 나는 학위나 네트워크보다 나의 주제를 좀 더 공부하고 정리하고 싶어서 대학원을 온 것이었다. 그리고 졸업의 순간이 왔을 때 그에 대한 답을 재질문 한다면 "해냈다!"가 아니라 "이제는 할 수 있겠다!"라고 자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런 이유면 그냥 혼자 공부할 수 있지 않나 생각도 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에는 대학원을 전혀 생각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공부는 혼자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시작을 함께 하면 좋다는 것이 지금 와서 나의 생각이다. 




가장 크게 얻은 것은 '사람'이다. 



  대학원을 통해 얻은 것은 '사람'이다. 좀 더 제대로 이야기한다면 '특정 사람'이라기보다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사람에 대한 태도'이다.  좋은 기회로 과의 원우회장과 대학원 전체의 총학생회장까지 했다. 그래서 더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더 어렵다. 그것은 순간순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도 중요한 것이다. 


예전에도 글을 쓴 내용도 포함되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은 두 가지가 중요한 것 같다. 


  첫 번째는,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 궁금증이 그 사람이 가진 회사나 직함,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다. 교수님이 언젠가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함께 공부하는 원우들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맞는 말이다. 


  두 번째는,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던지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부족해서 나도 잘 못하지만 노력은 하고 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쓴 중용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자사, 중용 23장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오고 갈 것이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정성스러워야 사람이 남는 것이다. 




결국에 남는 것은 내가 쓴 글이다. 



  "결국에 남는 것은 네가 쓴 글뿐이다" 교수님께서 마지막 수업에 해주신 말씀이다. 대학원 공부를 끝내고 내게 남은 것은 졸업보고서와 40여 편의 내가 쓴 글인 것이다. 그 글들을 만들기 위해 산 50여 권의 책과 참고한 100여 편의 논문과 보고서들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추려서 '나의 생각으로 쓴 글'이 결국은 나에게 남는 것이다. 



  사실 모든 수업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고, 내가 산 모든 책과 찾은 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많지 않지만 그 양을 기술해놓고 보니 부끄럽다. 하지만 그것들을 부족하지만 나의 생각으로 엮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가 대학원에서 남은 것이다. 나는 관련된 글을 쓸 때는 책 보다 내가 쓴 글을 먼저 찾을 것이고 그게 더 선명하고 정확할 것이다. 




느린 공부를 시작하다. 



  대학원의 졸업은 끝이 아니라 느린 공부의 시작이다. 브런치에서 쓰고 있는 글의 큰 주제이자 키워드는 '느린 즐거움'이다. 그만큼 평소에도 느린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학원에서 내가 공부를 시작하며 얻고자 했던 것을 얻기는 시간이 너무나도 빨랐다. 물론 석사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끝맺음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내가 앞으로 가져갈 중요한 주제를 공고히 했다는 것은 자축할만한 작은 성공이다. 



  이제는 기한이 정해진 리포트, 매주 듣는 수업 중 교수님의 따끔한 한 마디는 없다. 하지만 더 강렬하게 다그치는 마음의 소리가 있다. 교수님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내일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공부할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 작업에 대한 나만의 결론이 있어야 한다."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 내가 밝히고 싶은 것에 대한 결론이 있어야 그 결론을 증명하고 설명하기 위한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그 뿌리가 되는 이론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많이 읽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나의 글로 정리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졸업하고 보니 그게 제일 어렵고 힘들지만 앞으로 느리게 혼자 해야 할 공부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순간에 존재는 시작한다
- 장재형, <마흔에 읽는 니체>, p77 


  졸업이 시작이기에 일요일 아침 8시에 홀로 카페에 나와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껏 그랬듯이 다시 일요일 오전 8시면 홀로 카페에 와서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겠다. 이미 다음에 쓸 제목도 메모해 놓았다. 그 글을 위해 읽고 알아봐야 할 것도 생각난다. 내일 읽고 쓸게 있는 느린 공부를 해 나가겠다. 





출처


사진. Pixabay


법제처. <고등교육법>. 제29조의 2(대학원의 종류)

전국대학원 http://www.gradmap.co.kr/

자사. 중용. 23장 

장재형. <마흔에 읽는 니체>. 유노북스.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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