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너의 목소리가 들려>

by 이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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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읽어서 아시겠지만, 시점이 정말 복잡하다. 동규 1인칭 시점에서 3인칭 관찰자, 승태 1인칭, 다시 3인칭 관찰자... 이걸 만약 영화화 한다면 고도의 시점 쇼트를 활용해야 할텐데, 촬영감독은 아마 이골이 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법에서 제이가 서술의 주체가 된 적은 없다. 제이는 항상 대상화 된다. 그리고 제이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인칭이 누구든 그의 사유는 모두 제이의 행동과 대사에서 비롯된다. 이렇듯 제이에 다각적으로 접근하면서, 소설은 그의 내적 성장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고속터미널 화장실에서 태어나, 보육원 신세를 지던 아이가 단순한 반항아가 아닌 맬컴 X와 같은 정치적이고 영적인 지도자가 되는 성장 과정을 말이다.


제이의 험난한 성장은 욕망의 집합소인 세상과의 대면에 다름 아니다. 세계는 거리의 비보잉 소년이 말했던 것처럼, 화려해 보이는 것도 이면은 정글이고, 그 안은 경쟁과 사투가 창궐한다. 제이는 (소설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가장 밑바닥 계급이라는 가출 청소년의 생활을 체험한다. 폭력과 난교의 나날에서 맥주병과 식칼을 손에 쥘 수 밖에 없던 제이. 남는 것은 육체의 상흔 뿐이라는 사실에 회의한 채 생쌀로 연명하고, 분별 없이 책을 주워 읽으며 세계를 감각한다.


무력감에서 시작한 제이의 정신은 욕망과 회의와 추락의 어둡고 긴 터널을 거친 후 마침내 분노를 만난다. 어른들의 소유물인 말 대신, 다같이 그리는 그림인 폭주라는 미적 체험으로 자신들이 분노했음을 표출한다. 알베르 카뮈가 그랬듯, 반항의 본질은 ‘우리는 존재한다’이다. 근본적인 것을 갖고 있는 자로 환원된 인간은 반항으로 존재한다. 반항은 다시 말해 부조리와의 충돌이다. 따라서 반항과 동일시되는 자기 긍정은 인간으로서의 자기 긍정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전제되지 않으면, 반항은 인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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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구비 구비에서 신약 성경의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소설을 반추해보면 재밌는 부분이 있다. 고속터미널 화장실과 ‘돼지 엄마’가 처녀임에도 젖이 나오는 체험을 하는 것에서는 마리아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다. 제이(J)라는 이름은 Jesus에서 따왔을 거고, 대학로의 ‘거리’에서 가출 청소년들을 찾아가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장면은 광야에서 복음을 설파하던 예수의 모습과 같다. 또한 제이의 말들을 자기 계발서의 싸구려 멘트라며 불신하고, 끝내는 경찰과 내통하다 결국 자살을 택하는 동규는, 유다(Judas)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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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가 독특하다. 40쪽에 달하는데, 르포 단편 소설을 보는 느낌이었다. 영하형의 자전적인 서술인 것 같기도 하고, 탐정물을 읽듯 계속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에필로그는 소설의 압권이었다. <파이 이야기>처럼 소설의 내용을 복기하게 만들고, 주제 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탁월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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