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버드>로부터
올 초는 아카데미 후보작들이 줄줄이 개봉하면서, 영화적으로 매우 풍족하였다.
특히 거의 모든 작품이 만족스러웠는데 <쉐이프 오브 워터>, <쓰리 빌보드> 를 비롯 <플로리다 프로젝트>, <더 포스트> , <콜미 바이 유어 네임> , <다키스트 아워>, <판타스틱 우먼> 까지 나의 취향에 더 맞는 올해의 영화를 순서대로 세울 수는 있겠지만 하나같이 훌륭했다.
그 중에서도 거의 후발주자격으로 개봉하는 <레이디 버드> 는 매우매우 기다린 작품이었는데, <쓰리빌보드>와 <쉐이프 오브 워터> 에 이어 기다림 3부작으로 부르고 싶을 정도 였다.
브런치 시사회에서 2주라도 미리 볼 수 있었는데, 기다림의 가치가 있었다.
주인공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은 자신을 '레이디 버드' (무당벌레...)라고 부른다. 스스로가 이름 붙이고, 다른 이에게 불러달라 요구한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을 부정하며, 지긋지긋한 고향 세크라멘토를 벗어나고 싶어한다. 영화는 레이디버드가 고등학교의 마지막 시절을 겪고, 세크라멘토를 벗어나 뉴욕으로 향하게 되는 이야기다. 첫사랑,친구, 엄마, 아빠, 학교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레이디 버드를 둘러싼 관계들이 얽히고 섥히며 작용 반작용한다.
어느새 훌쩍 생일을 맞이한 그녀는 슈퍼에서 담배와 플레이보이 잡지를 사는데, 성인이 된 자신에게 주는 선물같은 것이다. 그렇게 빨리 자라 어른이 되고 싶었던 그녀지만, 혼자 감흥 없는 성인 잡지를 보며 피는 담배는 생각보다 즐겁지 않아보인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성장의 씁쓸함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데, 그 점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레이디 버드 주위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 친구, 선생님 등 그녀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랑했던 대니와의 이별이나 악역처럼 보였던 제나나 영화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카일이라는 존재도 큰 위험이 아니다. 극적인 사건이 일촉즉발로 터지진 않지만, 누구나 겪었을 십대 시절 모든 '이별' 의 이야기를 개성있게 드러내는 일기장 같은 따뜻한 구석이 있는 영화다.
자의식 강한 레이디 버드 곁에는 언제나 줄스가 있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소울메이트 줄스는 첫사랑의 아픔을 함께 위로해주었던 베프 중의 베프다. 그러나 레이디 버드가 카일을 위해 제나라는 친구와 전략적으로 친해지면서, 줄스와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거짓된 관계에 각성한 크리스틴은 줄스에게 찾아간다. 우정의 재확인도 잠시, 각 자 다른 대학에 가게 된 두 친구는 마지막 프롬을 보내게 되고, 결국 이별하게 된다. 두 사람이 멀어지고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은 연인 관계와 다르지 않다.(아니 그 보다 더 소중해보인다) 레이디 버드는 그 시절 가장 소중한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별을 경험한다.
<레이디 버드>는 엄마와의 여행으로 시작해, 엄마와의 이별로 끝난다.
크리스틴 자체가 굉장히 고집불통 같지만 상대를 소중히 생각하고,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슷한 성격의 엄마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지 말라며 찾아온 대니를 진심으로 안아주는 모습이라니)
그만큼 레이디 버드는 엄마로부터 많은 것을 영향받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왔으며, 가장 슬플 때 기댈 수 있는 상대다.
그녀는 집요하게 세크라멘토를 벗어나 뉴욕에 가고 싶어하는데 세크라멘토는 엄마 그 자체나 다름 없다. 엄마는 뉴욕에 가도 실업자라며 독한 말을 하지만, 딸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현의 다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반대하는 엄마 몰래 뉴욕에 있는 대학에 지원해 가게되는데, 그 때 모녀의 신뢰관계는 와장창 무너져버린다. 아무도 없는 뉴욕에서 고독을 겪으며, 그녀는 그제서야 고향과 엄마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제서야 자신을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언제나 크리스틴은 슬픈 순간 엄마를 찾고, 엄마는 그 이유를 묻지 않고 그녀를 위로했다. 그러나 남자친구와 첫키스를 했을 때나, 대학에 붙었을 때, 또 일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등 기뻤을 때 모녀는 감정을 교류하지 못했다. 고향의 아름다움 광경을 보았을 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야기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을 보노라면, 비록 두 사람이 떨어져있고 관계가 멀어졌을졌지만 좀 더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거란 희망을 찾게 된다.
그레타 거윅의 영화들은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프란시스 하>와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등 노아바움벡 영화에서 보여준 색깔은 전부 노아 바움벡의 덕이라고 하기엔 그레타 거윅이 연기나 각본에서 보여준 인장이 강하다. 그녀의 능력을 확실히 증명한 것이(바움벡 없이) <레이디 버드>인 것 같다.
오히려 노아 바움벡의 영화들 중 그레타 거윅 없이 작업한 것을 보면 약간의 밋밋함이 느껴졌는데, 물론 <위아 영> 만 본 사람으로서 심한 비약일 수도 있겠다. <레이디 버드>는 바움벡의 작품보다 덜 차갑고, 더 쉬운 유머를 가지고 있으며, 더 감정이 살아 있는 영화다.
수 년만에 아카데미 감독상에 올랐다는 사실은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혔듯 많은 다른 여성 영화인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히 자신의 방식대로 좋아하는 것을 하면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