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느 가족>으로부터
가족 영화 장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어느 가족>(원제 만비키 가족) 은 그 동안 그가 보여준 가족 영화의 집대성 같은 작품이다. 이번 영화에는 <아무도 모른다>에서 보여준 현실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도 있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에서와 같은 주인공들에게는 분명 충격적인 사건 일 테지만, 이를 감싸 안고 살아가는 따뜻한 정서가 녹아 들어 있다. 게다가,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에서 그가 어린 연기자들을 기가 막히게 다루었던 방식은 <어느 가족>에도 훌륭히 반영되어있다.
얼마 전에 고레에다 감독의 수필집을 보았는데, 그가 어떻게 영화를 시작하고 만들어왔는지 그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알수 있었다. 그는 20년동안 영화를 찍으면서,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스스로의 생활이 무엇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는지 제대로 그리고 싶다고 했다.
“시대나 사람의 변화를 뒤쫒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사소한 생활에서부터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제 발밑의 사회와 연결된 어두운 부분을 주시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외부와 마주하고, 그 좋은 점을 영화 속에서 표현하는 것에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그의 작품관이 반영된 것이 <어느 가족> 이었던 것이고, ‘우리의 사소한 생활’ 이라는 것도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에서 배웠던 가족의 개념은 여성과 남성이 혼인하여, 그 자식들로(보통은 남,여 한 명 씩) 이루어진 4인 가족이었다. 피가 섞여 있어야 한다는 건 필수적이었고 사회가 규정한 ‘정상 가족’ 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차별을 당하고 소외감을 느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건 피가 섞여야만 진정성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성별로 이루어져 있든 지, 어떤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든 지 간에, 어떤 필요에 의해서든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 자체가 가족이 아닌가. 떡을 좋아하는 유리를 위해 무심히 다음 번 도둑질 때 떡을 담는 쇼타의 그런 마음이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 아니고서 무엇이라 부를 수 있나?
<어느 가족>에서 안도 사쿠라가 뛰어나게 연기한 ‘노부요’는 유리나 쇼타에게 ‘엄마’라는 소리를 듣고자 강요하지 않는다. 이름 불려지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였다. 그러나 그가 납치범으로 몰려 검사에게 취조 당하면서, 유리에게서 엄마라는 소리를 들었냐는 질문에 무방비한 표정으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사회가 규정한 가족 개념이 얼마나 폭력이 될 수 있는 지 생각하게 한다. 거대한 사회 앞에 놓인 노부요의 막막한 표정은 얼마나 그들이 꾸려왔던 순수한 애정이 오염되어 무력하게 만드는지를 방증한다.
사람들이 보기엔 ‘돈’을 위해 모인 납치범 집단으로 보일법한 그들의 실제 이야기엔 금전적인 것 이상의 순수한 사랑이 있다. 그러나 법이, 미디어가 그들을 ‘돈’ 이란 카테고리로 묶어서 규정짓는 순간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라져버렸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뿐 아니라, 많은 일본영화에서 등장하는 불꽃놀이 장면(하나비) 은 조그맣던 크던 빛나는 불꽃을 보며 따스함을 교환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어느 가족> 에도 이러한 불꽃놀이 장면이 등장하는데, 주변 건물들에 가려진 작은 집에서 직접 불꽃 놀이를 하지도, 보지도 못하고 소리만 듣는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 스즈가 친구들과 큰 불꽃놀이를 바다에서 바라보고, 집에서 언니들과 함께 진짜 가족이 됨을 기뻐하듯 불꽃놀이를 하는 장면과 대비된다) 소리만 들으며 상상의 불꽃을 나누는 그들에게, 진짜 불꽃놀이를 즐길 기회를 세상은 허락하지 않는다.
영화 속 어른들은 모두 아이 같은 구석이 있다. 위대한 할머니 키키 키린도 계속하여 자신을 떠나고 죽은 남편의 집에 찾아가 복수하고, 릴리 프랭키의 시바타도 분명 ‘가장’ 으로 스스로를 칭하지만 어떡하든 노동을 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친다.
그에 비해 아이들은 큰 어른 같다. 쇼타는 좀도둑일을 맡아서 하면서, 집의 생계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친엄마의 폭력에 노출되었던 유리는 힘껏 울지도 못하고 참는 것에 익숙하다. 동생 유리에게 도둑질을 똑같이 시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던 쇼타가 일부러 경찰에 잡힌 것은 가장 도덕적이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 아이인 쇼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음이 더 무거워 진다.
아이에게 자신이 유일하게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이 도둑질이었다고 고백하는 시바타의 모습도 이해가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을 파멸시킬 것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동생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여겼던 쇼타의 행동은 어떻게 키워지든 아이라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존재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