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 - 14
오디션에 미친 나라
대한민국은 오디션에 미쳐있었다.
수많은 난관을 거쳐 결국 최종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성공 서사, 사실상 가장 빠른 루트로 계층이동의 합법화된 사다리를 제공하는 오디션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특히, 다른 어떤 평가 기준 없이 오로지 시청자의 투표로만 선발되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더 과몰입을 일으켰는데, 대리 만족 이상의 무언가(시혜적 감정 따위의...)가 그를 더 부추기지 않았나 싶다.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신화를 기원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이돌의 정체성은 완벽한 존재로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탄을 불러일으키며 칭송하도록 만드는 것에 있다. 그러나 아이돌 프로그램은 신의 영역에 있는 그 권력을 팬들에게 쥐어줬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끝판왕이었고, 사실상 프듀 시리즈로 정점을 찍은 뒤 영광과 상처를 뒤로 하고 관심이 사라지게 되었다.
수많은 덕후를 양산하다
프듀 시리즈는 사실상, 덕질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 데 기여했다. (물론 그즈음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한 BTS의 인기와 그들의 팬덤인 아미는 아이돌 덕질을 수면으로 끌어올리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길티 플레저 내지는 배덕감 같은 감정들이 여전히 존재했으나, "아이들의 꿈을 이루어준다"는 굉장한 명분이 있었다. 아이들의 꿈과 시청자들의 진심을 이용한 방송국의 아주 영리한 사업이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아이돌 산업에서 프듀가 기여한 바가 있다면, 많은 일반 사람들(예비 덕후들)을 덕후로서의 각성을 이끌어냈다는 것에 있다. 지금 MBTI를 묻는 것처럼, '당신의 원픽은 누구입니까?'란 질문이 일상적인 질문이 되었다. 특히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던 남자 연습생들의 시즌2의 경우,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투표 품앗이를 하는 등 각자의 원픽 연습생의 데뷔를 위해 함께 매진했다. 그 모습을 보면 정말 그 원픽을 아끼는 것인지, 그보다는 원픽에게 열정을 쏟는 본인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을 즐기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아이돌 덕질을 하는 것도 아이돌을 위하고 응원하는 마음에 기반을 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무언가에 진심으로 빠지고 애정을 쏟아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자신을 위한 행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덕질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하고 무해한 사랑일 수도 있지만, 충만함을 얻어 어떻게든 현실을 버티며 살고자 하는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의 비약을 가정하고, 제대로 잘 살기 위해 덕질을 하는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공정해 보이는 세계
아이돌 오디션의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은 객관적인 외모나 실력 그 자체가 인기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굉장히 주관적이고 측정이 불가능한 '매력' 이 어쩌면 가장 큰 요소라고 볼 수 있는데 여기에 인성이나 어느 정도의 행운도 중요하다. 이것이 수많은 연습생들을 아이돌이라는 꿈을 꾸게 하는 속성인 것 같다. 주관적이고 예측 불가하기 때문에 어쩌면 공정해 보이는 세계가 주는 유혹.
아직 보호를 받아야 할 나이에 아이들은 혹독한 스케줄을 소화하며 연습하고 연습한다. 데뷔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서,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갈아 넣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에서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매진하는 것은 연습이라기보다는 수련에 가깝다. 실력보다는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남들보다 빠르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깨닫고, 그것만을 위해 노력하는 그 확신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해 관대해도 될 나이에 너무도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평범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사실은 좀 안타까울 때가 있다.
아이돌 산업의 소비자로서, 최애 아이돌을 둔 덕후로서 화려한 세계 뒤편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폭력과 희생들에 대해서 항상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내 최애가 아이돌로서의 삶도, 그로부터 벗어난 삶도 스스로 잘 아껴주면서 살아갔으면 하고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