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아티스트의 음악들

다시 만난 세계 - 13

by 시그리드

상상 혹은 이상

우리가 즐겨 듣는 K-POP의 작곡가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작사의 경우, 여성 작가의 비율이 많은 편이지만 상대적인 것일 뿐 작사 작곡 크레디트의 성별은 한쪽에 치우쳐 있다. 어느 유명 남성 작곡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보이그룹의 노래를 만들 때는 본인이 되고 싶은 모습을 상상하며 작곡하고, 여성 아이돌의 노래의 경우 보고 싶은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다고 한다.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상적인 것, 그것이 바로 여성 아이돌의 음악인 것이다.

그렇게 여성 아이돌은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사랑을 고백하라고 대범하게 유혹하고, 현실에 없는 요정이나 여신이 되어 노래하고 춤춰왔다. 그 안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신해서 연기하는 캐릭터에 가까웠달까. '오빠'라는 단어가 서슴지 않게 노래에 등장하던 시절도 있었고(좋은 날, Oh!, 붐바야 등).


그러나 최근엔 여성 작사 작곡가들의 참여도 늘어나고, 여성 아이돌이 직접 자신의 음악을 작사 작곡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아티스트는 본인이 만든 노래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비로소 누군가의 판타지가 아닌 본인의 모습으로 무대를 서는 것이다.



여성 아티스트의 음악들 - 누군가의 판타지가 아닌, 나

그간 인상 깊었던 노래들을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웬디(WENDY) - When This Rain Stops

아이브(IVE) - ELEVEN

아이즈원(IZ*ONE) - FIESTA

전소연((여자) 아이들) - LION

김세정 - SKYLINE


웬디의 솔로 발라드인 When This Rain Stops 은 웬디가 부상 이후 1년여 만에 컴백한 곡으로, 진정성 있는 웬디의 목소리와 위로하는듯한 가사가 일품이다. 여성 작곡가 밍지션이 작사, 작곡에 참여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을 스스로와 팬들을 격려하는듯한 내용(이렇게 가끔은 멈춰가도 돼 / 쉬어도 돼 / 마음에 비가 내려도 / When this rain stops / 그냥 다시 웃으면 돼)이 인상적이다.


아이브의 데뷔곡인 ELEVEN은 스타 싱어송라이터 서지음이 가사를 썼다. 막 사랑에 빠진 순수한 감정을 다루는 평범한 곡 같지만, 엔딩에 이르면 이 곡이 범상치 않음을 드러낸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다채로운지에 대한 감탄이 반복되다가(미처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 그동안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스스로를 사랑하겠다는 자기애 UP 자존감 뿜뿜 가사(내 앞에 있는 너를 / 그 눈에 비친 나를 /사랑하게 됐거든)는 왜 이 노래가 1020대 여성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지 알게 한다.


팬들 사이에서 '애국가'로 칭송받는 아이즈원의 FIESTA 또한 서지음이 작사했다. 현재의 빛나는 자신을 사랑하며 이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다짐, 그리고 자신감의 발로로서 나의 축제에 놀러 오라는 주제가 화려한 멜로디와 고난도의 퍼포먼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곡으로 탄생했다. (영원토록 뜨겁게 지지 않을게 이 모든 계절 / 나의 모든 계절 매일 화려한 이 축제 / 한 번쯤은 꼭 놀러 와)


전소연은 현재 아이돌 씬에서 작사 작곡부터 프로듀싱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창작하는 독보적인 크리에이터로 꼽힌다. (여자)아이들의 메인타이틀은 모두 전소연의 손을 거쳤는데, 많은 곡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LION이다. 장엄한 분위기가 대서사시를 연상시키는 이 노래의 가사는 '라이온 킹'을 비튼 것으로, 그 어떤 아픔과 사랑이 힘들게 할지라도 나를 길들일 수 없으며, 왕좌에 앉는 것은 결국 나라는 내용이다. (Ooh I'm a lion I'm a queen 아무도 / 그래 Ooh 길들일 수 없어 사랑도)


김세정 또한 솔로 앨범으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아티스트다. 시원한 보컬과 락의 느낌이 가미된 SKYLINE은 김세정이 가진 특유의 청량함과 낙관성이 그대로 녹아져 있는 멋진 노래다. (나만의 시간엔 그 모든 게 더 빛이 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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