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로부터
Fox Searchlight 의 배급 영화인 <셰이프 오브 워터>는 2018년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은 후보에 올랐으며,
작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이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품성을 보장해주는 수많은 수상실적은 마케팅에서 셀링포인트로 활용되고 있다.
영화의 프로덕션이 진행되고, 해외에서 개봉되고, 결국 우리나라의 개봉되기까지의 과정을 현기증나도록 기다렸는데, 역시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영화였다.
슬프고 아름다운 판타지로 많은 사람들이 치켜세우는 <판의 미로> 에서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은 스페인 내전을 영화로 끌어온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그것도 암울한) 에 판타지를 첨가하는 식이다. 암울했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판타지일 것인데, 그 처연함과 절박함이 영화에 잘 녹아 들어가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냉전시대 소련과 미국의 우주경쟁을 배경으로 한다.
미국의 비밀연구소의 청소부인 엘라이자는 우연히 연구소에 잡혀온 괴생물체를 보게되고, 그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보안책임자이자 모든 권력과 편견의 집합체(백인/남자/미국인) 악인 '스트릭샌드' 에 맞서, 엘라이자는 괴생물체를 구출한다. 그 과정에서 사랑스러운 조력자들이 그녀를 돕는다.
여기서 권위와 폭력을 상징하는 백인우월주의자에 대항하는 인물들의 특징을 보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드러난다. 장애가 있는 여성 엘라이자를 비롯 게이이자 한물간 예술가 자일스, 흑인 여성인 젤다, 자유를 잃고 잡혀온 생명체 등 각자가 소수성을 함의하고 있다.
소수자가 연대하여 강자에 대항하며 희망의 불씨를 찾아갈 수 있는 것은 판타지라는 틀 덕분이 아닌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판타지라는 꿈을 영화는 멋지게 구현해낸다.
비인간(괴생물체)와 비인간의 사랑이야기는 그 자체로 '사랑의 위대함' 을 이야기 하기에 충분한 소재일 것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생물이든, 어떤 형태이든 간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곧고 아름다운 메시지는 이 영화 내내 흐르고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란 제목이 암시하듯, 물은 사랑으로 수렴되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말처럼 "가장 유연하고, 부드럽지만 어떤 영역이든 넘나들 수 있는 강인한 것" 과 같다.
물은 주인공 엘라이자 주위에 어디든 존재한다. 어렸을 적 강가에서 발견된 그녀는 물로 가득찬 꿈을 꾸고, 물에서 쾌락을 느끼며, 물에서 나온 생명체와 동질감을 느끼고 사랑하게 된다. 어쩌면, 그녀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필연적인 것 같다. 물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결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결말 부분에 이르러 물(사랑)이 일으킨 기적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마법같은 힘을 실감하게 된다.
신형철 평론가가 씨네21에 기고한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를 보고 굉장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그는 글에서,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의 결여를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상대가 나보다 우월한 것은 발견하고 이를 숭배하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동경에 가깝고,
상대의 결점을 나에게서 발견하고, 그 아픔을 실감하며, 이를 보듬고 부족한 점까지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 말로 사랑인 것이다.
엘라이자는 괴생물체를 구출 계획에 동참해달라는 요구를 거절하는 자일스에게
"I move my mouth like him. I make no sound like him. What does that make me?" 라고 소리친다. 저 대사는 말을 하지 못하고, 핍박받는 외톨이로서 고통을 아는 엘라이자가 괴생물체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보는 이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셸리 호킨스가 세상에서 '연약해보이지만 강단있는' 즉, 외유내강의 캐릭터를 가장 잘 표현해내는 배우라고 생각 한다. <핑거스미스> '수잔' 이 그랬고, <내사랑>의 '모드'가 그러했다. '장애를 가진 여성 청소부'가 백인남성(스트릭샌드)가 상징하는 편견, 권위와 폭력으로부터 사랑하는 자를 구해내고 굳건히 맞서는 이야기를 납득시킬 수 있는 배우는 셸리 호킨스 외에는 떠올리기 힘들다.
그녀야 말로, 물과 같은 배우가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프로덕션 디자인은 첫 오프닝 시퀀스부터 가슴을 뛰게 한다.
아무도 못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듯 강박적으로 사용한 '녹색' 은 엘라이자 주위에 어떤 형태로든 펼쳐져 있다. '빨강' 은 욕망과 사랑의 순간에 때때로 등장한다.
육체적인 쾌감이나 욕망을 상징하는 계란이라는 소재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부분도 재미있었고
재치 있는 편집점들(손가락 봉지가 콘프로스트로 맞아떨어지는 편집이라니) 도 여러차례 웃음을 주었다.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슬프지 않은 보석같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