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그 자리를 해방의 공간으로
매일이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들으며 10분만 더 잘까. 오늘 아침은 그냥 시리얼을 먹을까. 오늘은 노란색 셔츠를 입을까. 일상의 소소한 선택에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이러한 소소한 선택들이 모여 하루를 걸어나가듯 인생에 있어 한 걸음 내디디며 하는 선택들이 있다.
나에게 있어 꽤 오랜 시간, 밀도 높은 고민의 시간을 보내며 한 선택들이 있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복직을 했을 때, 워킹맘으로 치열하게 4년을 보내고 제주살이를 선택했을 때. 제주살이를 마치고 다시 일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인생의 큰 결정들을 하기 위한 많이 고단한 생각의 시간들을 보낸 기억이 있다.
워킹맘으로 일하며 육아하며 그렇게 지내다가 제주살이를 선택했던 것은 그 당시에는 결정하기까지 참 많이 힘들었지만 그 시간을 다 보내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 선택이 얼마나 내게 필요한 선택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지난 후에 결과를 미리 알고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날 나는 제주행을 선택하기까지 매일 아침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하며 이게 맞는 일인가에 대한 고민을 반복했던 시간이 있었다.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선택해야 할 부분이었음을 알아도 매일 같은 질문을 하며 반복적으로 고민했었다.
나는 일을 좋아한다. 나는 가치를 파는 마케터로 10년 넘게 일을 해보고 있다. 일에 대한 사명감으로 육아를 하며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매번 마음을 다잡았지만, 나는 늘 아이에게 미안했고 아이를 봐주시는 친정부모님께 늘 죄송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가 조금 부족한 모습이 보이면 다 일하는 엄마,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그때 드는 마음은 그랬다. 온전히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늘 마음 한켠에 두고 살았다.
회사를 그만둘까?
회사를 그만둔다고 좋은 엄마가 되는 걸까?
늘 정답이 없는 고민을 하며 선택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다. 그러다 잠을 줄여 일을 하다 임파선염이 커져 조직 검사까지 하며 몇 개월 고생을 하고 번아웃이 왔다. 그러던 중 남편이 제주살이를 제안했고 그렇게 몸이 안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을 두고 떠나고 싶진 않았지만 최종적으로 떠나는 것으로 선택한 데에는 세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6살이 되는 아이와 오롯이 함께 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
둘째. 우리 가정에 남편과 내가 기도하고 있는 비전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제주행은 꼭 필요했던 것 (비전은 천천히 나누기로 하겠다)
셋째. 지난 15년 열심히 달려온 나 자신에게 여유와 유연한 마음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건 제주행을 결정하고 찾은 이유에 가깝다. 회사에 다닐 때는 일하는 게 참 좋고 떠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
그래서 나는 자의 반, 타의 반 그렇게 제주로 떠나는 선택을 했다. 남편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절대 스스로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었으니까.
사실 처음 제주에 내려가서는 하루아침에 바뀐 모든 것이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진 일, 원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던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 어색한 환경 속에 놓인 나는 마치 나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거 같았다. 내가 그동안 일 때문에 존재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허전하고 남들은 부러워하기만 하는 제주 생활이 무엇에 갇힌 듯 마음이 답답했다. 힘들어하며 넋두리를 하는 나를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치로 보였으리라.
나는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 감사하지 않은가. 제주에서의 생활이라니.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남편과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라니. 내 안에서 일을 덜어내고 욕심을 덜어내고 사람을 덜어내니 나 자신에 대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힘들어하는 사람인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가로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시간을 일부러 가진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치열하게 살아온 몇 년간의 나는 잠깐 여행을 떠나도 머릿속으로는 일 생각을 하거나 다음에 갈 곳을 떠올리거나 하며 늘 무언가를 생각하는 끈을 놓지 않았었다. 그러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겨울바다를 감상하고 숲을 거닐고 산책하며 마음의 여유를 얻었다. 나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시간을 거스르고 제주살이를 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과 매일 해야 할 일, 함께 보내던 사람들은 없어졌었지만 대신 매일 하늘과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가족과 온전히 함께 하는 시간, 제주에서의 새로운 인연들을 얻었다. 자연 속에서 마음이 단단해지고 세상을 대하는 유연함을 얻었다.
그렇게 제주에서의 1년 6개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나는 제주에 오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당했다'는 표현이 맞는 것은 뒤에서 트럭이 그냥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찔하고, 부모님이 당시에는 크게 다치셨어서 정말이지 지옥과 같은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회복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참 많이 힘들다. 그 사건을 계기로 우리 가족은 제주를 떠나는 것에 대한 결정, 선택을 또 해야만 했다.
남편과 오랜 상의와 기도 끝에 우리는 2년의 제주살이를 마무리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오는 결정을 내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 과정에서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 결정적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제주에서의 시간을 보내던 중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일을 함께하자는 제안이었다. 내가 필요한 자리라는 것이다. 아이가 8살이 되며 초등학교에 올라가니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하나 고민을 한 적은 있지만 아이의 학교 문제가 아닌 나의 이직 문제로 올라가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과 오랜 상의 끝에 우리는 제주살이를 마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기로 결정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내게 맡겨진 팀원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갈 일이 기대됐다.
그런데 입사 후 나는 또다시 후회가 밀려왔다. 자연 곁에서 지내다가 갑자기 타이트한 도시 생활이 어려웠던 것인지, 내가 생각한 회사의 조직문화가 달라서인지. 적응 기간이라 그랬을지.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다시 제주를 떠난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참 나란 사람이란. 제주를 떠난 것부터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 급기야 이 회사를 선택한 것까지 후회되는 생각이 이어졌다. 후회해 봐야 내 마음만 힘든 것인데도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그런 나 자신이 안쓰러웠다. 왜 늘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대해 믿어주지 못하고 후회를 하는 것일까. 후회되는 마음이 생길수록 나는 더 제주를 그리워하고 제주를 떠난 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그러다 이렇게까지 나의 선택을 스스로 믿어주지 못하는 내가 나는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정의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생각했고 얘기 나눴고 그때 내린 나의 선택은 그 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후회를 하지 않을 선택 말이다. 후회되는 포인트, 일들이 생기면 나는 얼른 마음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참 진부한 방법이지만 이 방법만큼 효과가 있는 걸 찾지 못했기에 감사한 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 마음이 언제 또 무너질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여기에서 지금 놓인 이 상황에서 감사한 것들을 하나씩 찾게 되었다.
선택은 하고 나서가 더 중요하다. 그 선택이 옳았던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나는 자신의 자리에서 난 열심을 다하고 있다. 그걸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었는지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내가 한 선택을 좋은 선택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 정답은 여기에 있다.
'급한 물에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처럼' 참 좋아하는 구절이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 나는 지금 있는 이곳에 씨앗을 뿌리내리고 새싹이 돋아나기를 바라며 매일 성실하게 지금 주어진 자리를 지킬뿐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나도 성장하고 내게 맡겨진 사람들이 나로 인해 조금은 더 성장하기를 바라는 그 원대한 꿈을 꾸며 말이다.
‘해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 그 자리를 해방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것"
지금 딱 나에게 필요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