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는 매일 흔들렸다

워킹맘, 그 짠하고도 위대한 이름이여!

by 온포레


전화가 울렸다.


"언니~ 잘 지냈어?

내가 고민이 있는데 언니 생각이 나서..

내가 육아휴직 중이잖아.. 아이를 맡기고 복직하는 게 맞는지..

근데 복직은 하고 싶고..

이대로 그만두면 앞으로 일을 또 할 수 있을까도 싶고..

너무 어렵다 언니..."


6년 전.

내가 육아휴직 후 복직 하기 전에 아주 치열하게 했던 고민이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복직을 선택했고 워킹맘으로 가열차게 4년을 보냈다. 내가 한 선택이 정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매일 참 열심히도 살았다. 내가 하는 일이 INGO(international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마케팅 일이라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으로 복직이 맞다고 결심한 부분도 있었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도 전세계 가난으로 인해 꿈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찾아주고 싶은 거대한 꿈이랄까.


다행히 친정엄마가 사시는 동네로 이사를 가면서 친정부모님이 아이를 많이 봐주셨다.

아이를 봐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살 수 있었다. 도와주는 손길과 부모님 마음으로 인해 늘 감사함이 있었다.

덕분에 나도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내 일을 하며 자기효능감과 성장, 성취감도 맛보았으니 결과적으로는 복직을 안한 것보다는 한 것에 대한 선택이 더 좋았다고 그렇게 믿는다.

물론 부모님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참 잘했던 결정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시절 나는 매일 흔들렸다.


출근할때마다 우는 아이를 두고 나오며

'아이를 맡기고 이렇게 일을 하는 게 맞을까'


대상포진까지 와서 고생하시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힘드실텐데 맡기고 이렇게 일을 하는 게 맞을까'라는 자책과 죄책감과 싸웠다.


일을 하며 빈민가의 어린이들이 후원자를 만나 학교를 나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그래도 이렇게 일을 하며 아이들을 도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해' 하며 나를 다독이기도 했다.


엄마로, 아내로, 딸로, 팀장으로 나는 잘해내는 게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던 날도 수없이 보냈다.


수면부족으로 체력은 고갈이 되어가고

몸이 피곤해지니 점점 예민해지기도 했고

그러면서 억울하기까지 한 마음도 고개를 들곤 했다.

뾰족해진 감정이 아이의 미소에 동그래지고

동그란 감정이 다시 뾰족해지는 과정을 몇번이나 겪은 후에야 그 빈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한 선택에 후회를 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그 안에서 의지적으로 감사를 찾고 의미를 발견하고,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누군가 그랬다.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행복한 지점들을 찾고 찾고 또 찾아가며 그 작은 빛이라도 쫒아가 마음을 그곳에 누이며 안정을 얻곤했다. 지금 돌아보니 참 치열하게 나의 마음과 씨름하며 살았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얘기해주고 싶다.


어떤 선택을 하든, 정답은 네가 만들어가는 거야.

워킹맘의 삶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매일 조금씩 방황하고 고민하며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면 되는거야.

그게 어떤 선택이든,

언젠가 내가 한 선택이 옳았구나 하며 느낄 먼 훗날의 네가 있을테니 잘 버텨내기를.

어차피 인생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고민의 농도는 낮추기를.


그렇게 걸어가다보면

이 모든 시간이 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될테니까.




작가의 이전글브랜드의 힘은 구성원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