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중등맘 이란 이런 건가요?

또 반성모드, 아프니까 엄마다.

by 팜므홍

아이가 예비중등이 된다.

"예비중등"이라는 말이 참 재미있다.


예비중등이 된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공부들이 과목으로서의 공부로 전환되고

(심지어 독서까지도)

일반 학원에서 내신학원, 입시학원도 기웃거리게 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입시설명회, 입학설명회라는 것도 가게 되는 마법 같은 단어이다.

지금까지 나름으로 "쿨"한 엄마를 지향한 나에겐 그렇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이를 위해 저녁도시락이란 것을 싸기 시작했으니 "예비중등맘"이라는 것은 놀랍도록 대단한 단어인 것이다.


나는 예비중등맘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갖게 되면서

내가 그렇게 욕망과 욕심이 그득그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혹은 엄마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이를 뱃속에 품었을 때부터 알게 된 유모차의 등급과는 비교도 안되고

우리 애는 언제부터 말을 하고, 한글을 언제부터 읽게 되었다 하는 것들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욕심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어냈다.

초등 6학년 아이가 영어를 몇 바퀴를 돌았네부터 시작해서 수학은 2-2의 삼각형은 했지만 아직 도형의 닮은 꼴은 들어가지 않아서 피타고라스에는 합류할 수 없고, 함수와 연립방적식으로 2-1 심화까지는 했다를 거쳐서 국어는 기파랑 필독서를 시작해서 지금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시작했다 까지 뻗쳐가는, 처음에는 외계어같이 들리던 것들이 어느샌가는 술술 나오면서 꽤나 뭐 입시에 관해서 뭐 좀 아는 엄마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지방 광역시에 살면서 서울 대치동만은 못하더라도(대치동 학원가는 안 가봐서 비교는 불가하지만) 이 지역에서 가장 최고로 꼽히는 학군지라고 불리는 곳의 수학학원으로 아이를 등록시켰다.

주 3회, 하루에 3시간씩 총일주일에 9시간의 수학수업을 들었는데 그 학원을 가기 위해 필요한 이동시간은 총 1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이래서 다들 학군지로 이사를 가는구나를 알게 되었다. 이 지역으로 이사 올 때 이 학군지에 위차 한 아파트들을 그냥 패스해 버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



그래도 꾸역꾸역 보냈다.

저녁 도시락을 싸는 내 모습이 "진짜엄마"가 된 것 같았고

나도 차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라이딩맘" 이 되었다는 것에서 왜인지 모르게 남들 다 걸고 있는 작은 목걸이 하나를 걸친 듯한 뿌듯함이라는 감정이 생겼다. 내가 한가인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전혀 힘들지 않았고, 아이가 학원이 끝나서 차문을 열고 차량에 타면 오늘도 나는 엄마로서 나의 일을 모두 해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동안 못 해준 것을 해준다는 보상심리도 있었고,

조금 더 일찍 이렇게 시켜볼 걸 하는 미련도 있었고

그랬다.


아이는 아이대로 지치고, 나는 나 대로의 욕심이 끝없이 커져갔던 것 같다.

아직 중학교는 입학도 하지 않은 "예비중학생" 맘인데도 말이다.


어느 날, 밤늦게 아이가 울면서 아빠에게 전화를 하면서 나의 한없이 커지기만 할 것 같았던 욕망은 멈칫할 수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 아이 공부를 1년만 시킬 거야??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내 귀에 가장 꽂힌 문장은 이거였다. 그 와중에도 말이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 엄마라는 사람이 애를 왜 그렇게 모르냐면서 살살 달래가면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양으로 조금씩 끌고 갈 생각을 해야지! 하는 말들도 했다.

맞다. 맞아.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것인데, 그게 아이 공부라고 다르지 않고, 모든 일이라는 게 밀어붙인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왜 그동안 몰랐던 걸까?

나만 몰랐던 걸까? 혹은 누구나 거쳐가는 과정인 걸까?


쨌든 아이의 눈빛에 힘이 없어지고, 예민해지면서 둘이 부딪치는 일이 잦아지고 급기야 엄마가 데리러 오는 것보다 셔틀을 타는 게 더 낫겠다며 대화를 거부하기 시작하는 그 신호에서도 애써 모른 척했던 나였다.

평소에 스스로 계획해 둔 공부는 계속 밀리고, 그러니 당연히 평소에 좋아하며 다니던 다른 학원들도 가기 싫어하게 되고 점점 의욕이 없어지는 TV에서 걱정스럽게 나오던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10대 소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날밤 남편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한달음에 달려왔고,

긴 가족회의를 했고

그 뒤로도 나는 정말 많이 대화를 하려고 (혹은 입을 꾹 다물려고) 노력했다. 노력 중이다.

아이가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건 아니라더라.

다만 숙제가 너무 많아서 모두 다 완료할 수 없고, 숙제를 모두 끝내지 못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 싫었던 것 같다. 누구나 그렇잖아. 우리 아이라고 다를 리가 있나.


할 수 있는 양을 조절해 주는 것도 꽤나 큰 엄마의 역할인 것이다.

내 욕심대로 하지 말고,

원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이라잖아.

3월이 되면 "예비"라는 단어를 떼어내겠지만 여전히 실례합니다. 중등맘은 처음이라서요. 가 되겠지만

너도 나도 모두 처음이니깐

그 처음의 순간을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채워봐야 되지 않을까.

채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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