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0] 정지: 여행도 휴가도 말고, 당장 멈추기

비행기 표가 아닌 정지 버튼이 필요했다.

by 옹봉

발리에 한 달 살아볼까? 아는 언니가 갔는데 정말 좋았다던데.

나트랑에서 요양하듯 푹 쉴까? 요즘 나트랑이 그렇게 좋다던데.

치앙마이는 어떨까? 차라리 방콕으로, 도시 여행도 괜찮겠지.

아니면 호주? 그래, 호주가 좋겠다. 멜버른은 직항이 없으니까 시드니로 들어가서ㅡ 맛난 와인, 브런치, 커피... 여유롭고 한적한 일상을 보내다가 와야겠다.


그게 내 처음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내키지가 않았다. 매년 돌아오는 여름휴가처럼, 매번 떠났던 여행처럼ㅡ 먹고 쉬고 놀고, 그리고 다시 출근하면... 그건 그냥, 일상의 연속 아닌가?


난 진짜로, 멈추고 싶었다. 재생되던 음악을 잠시 멈추는 순간 찾아오는 그 갑작스러운 정적. 영화를 보다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면, 그 순간 흐름이 뚝 끊기는 것처럼. 그냥 그대로ㅡ 흐르던 것들이 지체 없이 멎고야 마는 것처럼. 10년 간 쳇바퀴처럼 쉴 새 없이 돌아가던 나의 일상을 잠시 잠깐, 멈추고 싶었다. 오랜 시간 밟고 있던 엑셀에서 발을 떼어 브레이크에 가져다 두고 싶었다.


11년 차 직장인,

'탈출'이 아니라, '정지'를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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