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찌라시는 진실된 찌라시였다
우리는 단기간 대폭 성장한 대한민국이다.
“유례없는”, 이 무시무시한 단어의 표본이 대한민국이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우리는 '흙'과 함께 살았다.
평소엔 집안일과 부모님을 도우며 가정의 일손을 거들었고, 학교에 가면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하교 후엔 친구들과 약속하지 않아도 동네에 모여 함께 놀이를 했고, 때가 되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흙과 함께했던 일상은 '감성' 그 자체였다.
그러나 식물과 함께하는 일상엔 금전이 따라주지 못했다.
공들인 노력과 실제 성과는 비례하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는 '교육'을 미래의 희망으로 여겼다.
배움에 목이 말랐고 늘 배움의 기회에 감사했다.
그 당시 부모들의 자식을 위한 사랑은 공부를,
올바르게 말하자면 ‘배움’의 기회를 주는 것이 사랑하는 방법 이었다. 자식들은 그런 부모의 마음을 온전히 알았고 감사했다.
굶주리지 않는 편안한 삶을 살고 싶다. 그러면 공부를 하자.
공부에 대한 물증은 대학이다. 대학에 간다. 이왕이면 도시인 서울로.
그러면 실력이 증명되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그러면 내 남은 여생은 새로 꾸린 가정에서 굶주림 없이 행복하게 살다 마무리하겠지.
수천만 국민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 곳이 교육이었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교육열은 과열됐다. 무섭도록 치솟았다.
모두가 열심히 살아온 덕에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했다.
어느새 돌아보니 온 세계가 떠오르는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성공 신화를 인정하고 있었다.
덕분에 더는 과거의 배고픔이 평준화되던 시대는 사라졌다.
사람들은 삼시 세끼 밥을 먹고 살만해졌고, 교육의 위대함은 전 국민이 체감한 성공의 루트였다.
경제가 성장하며 자연스레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증가했다.
커져가는 시장. 그러나 우리가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교육시장이 부르는 비용은 수용 수준을 능가했다.
우리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른들은 분수에 넘는 돈을 부담해야 했고, 많은 돈을 벌어야 했다.
부모들의 삶은 팍팍해졌고, 외로움과 우울함이 행복을 대체했다.
서울로 왔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현실은 제자리.
여전히 돈이 없었고 고생 끝에 행복은 없었다.
뭔가 잘못됐음을 알고 있지만 걸어온 길이 아까워 우리가 체감했던 성공 신화의 역사적 길을 그대로 걷는다.
응애, 태어나자마자 아이들의 인생 목표는 '대학'.
이런 사회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다.
왜? 왜 대학을 가야 하지? 돈 많이 번대. 그래?
근데 대학 가면 그 이후는?
이라는 의문을 품고 있어도 일단 하라는 사회와 어른들.
보통은 대학 이후를 생각해 볼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 생각을 할 때쯤엔 거의 스스로를 책임져야 할 나이에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생의 꿈도, 목표도, 대학의 의미도, 학습의 기쁨도 모른 채 어른들의 오래된 역사책 같은 성공 신화의 방향을 따라 아이들은 끌려오고 있다.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일단 해. 넌 학생이니까.
그러다 보니 배움에 대한 감사함은 사라졌다.
배움에 굶주렸던 그 시절 아이들 덕분에
교육의 기회는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의무가 되었다
더이상 지금 아이들에겐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하는 부모들의 사랑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학생이기 전에 아이로서의 권리인 놀 권리와 그로부터 경험하는 배움은 배움으로 치부되지 못했고, 본능적으로 아이들은 놀 권리에 굶주렸다.
공부는 지루해졌고 배우는 내용에 호기심을 갖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궁금증이 있어도 의문을 해결할 시간이 없어 그저 외웠다.
아이들이 학습한 배움은 수능을 향한 수단일 뿐이니까.
그렇게 아이들에게서 자주성과 개성이 사라져 간다.
가장 큰 문제는 그만큼 '책임감'을 배울 수 없게 되었다.
감시와 감독하에 자주성을 잃은 아이들이 치를 대가는 어쩔 수 없이 '핑계'와 '무책임함'의 학습이 되었다.
앞만 보고 빠르고 안정적이고 지루한 고속도로만 따라 걸으라는 명령하에 살아온 기억밖에 없어, 조그만 틀어짐에도 쉽게 부서지고 두려워하게 된다.
그렇게 공갈빵 같은 여린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
'성공이 뭔데?'
성공의 정의부터가 잘못 교육되고 있는 사회.
우린 세상이 달라졌다고 말하면서도
아직 성공이란 단어의 사회적 의미를 과거로부터 도약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교육 계엄령 안에 걸어오고 있다.
사랑을 모른 채
주체적인 나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우리는
남은 삶을 오직 나만을 위해 나를 사랑하는 데에 쓰고자 한다.
높아지는 환율에 치솟는 교육비.
교육 없이는 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나라.
고유한 가치를 외부로부터의 인정이 있어야만 가치라 여기는 사회.
우리에겐 '여유'가 없다.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야 나를 사랑해 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다.
이유는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정부가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울하다.
어른들도 우울하다.
우리의 마음속에 사랑의 힘이 줄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어른도 아이도 불행한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인구가 필요하지만 더 이상 아이는 없는 나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