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작은 온기들이 우리를 지탱한다
「일곱 번째 정오」
길을 걷다가 문득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내리쬐는 햇살이 유리창을 타고 부서지는 찰나, 바람이 흔들어놓은 나뭇잎 그림자가 벽에 스며드는 순간, 마주친 낯선 이가 조용히 건네는 미소 하나. 그저 스쳐 지나가도 괜찮을 사소한 장면들이 어느 날은 문득,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어느 겨울날, 버스 정류장에서 손을 호호 불며 서 있었다. 바람이 매섭게 불었고, 손끝이 저려왔다. 그때 옆에 있던 노인이 내 손을 흘끗 보더니 주머니를 뒤적였다. 아무 말 없이 호두 두 알을 내밀었다. 순간,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묵직한 감촉이 손바닥을 채웠다. 나는 멋쩍게 받아 들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길을 건넜다. 몇 걸음 뒤 돌아보니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별거 아닌 순간처럼 보였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겨울을 조금 다르게 느끼게 되었다.
비 오는 날, 편의점 앞에서 본 장면도 그랬다. 허름한 우산을 쓴 여자가 옆에 서 있던 남자아이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우산을 기울였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자신의 어깨를 내주며, 아이의 어깨를 가렸다. 그 여자는 자신의 옷이 젖는 것도, 머리칼 끝이 비에 젖어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저 모른 척, 여자의 옆에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장면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진 그 사소한 배려가, 이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한 곳으로 만들고 있었다.
우리는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이런 사소한 순간에 살아간다. 낯선 이가 문을 잡아주는 손짓, 지나가던 강아지가 다가와 눈을 맞추고 조용히 꼬리를 흔드는 순간, 힘들어 보이는 날 조용히 건네지는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 우리는 그런 것들로 하루를 버티고, 그런 것들 덕분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작은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순간에, 그 사소한 친절이 누군가의 마음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