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는 순간, 나를 찾기 시작한다
「여덟 번째 정오」
바람이 불었다. 무언가가 흔들렸고,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내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낯설었다. 그것이 내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스며든 어둠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살아온 날들은 분명 내 것이었을까.
어릴 적 나는 바다를 닮고 싶었다. 깊고 넓어서 누구도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존재. 하지만 살면서 나는 자꾸만 작아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기대 속에서, 이름과 역할 속에서 점점 작아지다가 결국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무엇이 진짜 나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마치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처럼, 어디에도 단단히 자리 잡지 못한 채 떠돌기만 했다.
어느 날 문득, 오래된 사진을 꺼내 보았다. 흐릿해진 흑백 사진 속에서 나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고, 울고 싶으면 울 수 있었던 시절. 하지만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는 것이 익숙해졌고, 남의 기대에 맞춰 나를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나를 잃어버린 걸까.
나는 길을 잃었다. 하지만 어쩌면, 길을 잃는 것은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불안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순간들, 나를 진짜 나답게 만드는 감정들. 그것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면서 깨달았다. 나라는 존재는 누군가의 기대나 타인의 기준 속에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여전히 나를 찾아가는 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덜 불안하다. 길을 잃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바람이 불어도, 그림자가 흔들려도,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걸어갈 것이다. 나를 잃어버린 순간조차도 결국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