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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 것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 것이 된 것들

by 온기

「열 번째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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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너무 평범해서 기억나지 않을 줄 알았다. 따뜻한 볕이 내리쬐던 오후,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흘러들어와 커튼을 흔들었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끓이고 계셨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연필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 학교 숙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창밖의 나무가 흔들리는 모습이 더 흥미롭게 보였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런 오후가, 그런 흔한 하루가 나중에는 가슴 깊이 그리워질 것이라는 것을.


어머니가 내 방 문을 열고 말했다. "공부는 잘 되니?"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냥 그래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며 한 귀로 흘려보냈다. 하지만 이제야 안다. 그 목소리 안에 묻어 있던 온기가, 그리움이, 어쩌면 걱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날의 어머니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나는 고개를 돌려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엄마, 그냥 그래도 괜찮아요. 옆에 있어줘서 좋아요."


우리는 매일을 살아가며 너무 많은 것들을 놓친다. 소중한 것이 눈앞에 있어도, 그것이 소중한지조차 알지 못한 채 지나쳐 버린다. 친구가 건넨 짧은 안부 인사, 퇴근길에 어깨를 스쳐 지나간 익숙한 향기, 가족과 함께 앉아 먹던 평범한 저녁 식사.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것들이 전부 사랑이었음을. 그것들이 모여 내 삶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을.


어떤 이별은 조용히 다가와 우리 곁을 떠난다. 어느 날 문득 돌아보았을 때, 더 이상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야 후회한다. 좀 더 귀 기울일걸, 좀 더 마음을 열걸,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걸. 하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도 되돌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해야 한다. "네가 있어서 참 좋아."라고. "오늘도 고마워."라고.


어느덧 창밖에는 봄이 오고 있다.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 위에는 연둣빛 새잎이 돋아난다.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닫는다. 언젠가 오늘을 떠올리며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더 사랑해야겠다. 더 눈에 담고, 더 오래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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