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따스함
「열한 번째 정오」
이별은 가만히 무너진다. 벽돌 하나가 빠지는 소리도 없이, 어느 날 문득 자신이 허물어졌다는 걸 깨닫는다. 다정한 말투로 시작된 문장들이 결국 차가운 작별이 되어 돌아왔을 때, 나는 몸을 움츠린 채 눈을 감았다. 그러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공기는 더욱 선명해지고, 날카로운 것들이 마음속을 헤집었다.
어느 저녁, 무심코 걷던 길에서 작은 꽃 한 송이를 보았다. 균열진 아스팔트 사이로 고개를 내민 노란 꽃.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놓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 꽃을 보고 나서야 울었다. 무너진 자리에도 꽃이 피어나는구나. 사라진다고 생각했던 내 마음도, 언젠가는 다시 따스함을 품을 수 있을까.
그날 이후, 아주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노부부의 손길, 버스 창문 너머로 스치는 저녁노을, 낯선 이가 문을 잡아주는 순간. 어떤 것들은 여전히 아프지만, 동시에 어떤 것들은 따뜻했다.
회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다시 내 손을 잡아주는 것도, 단번에 상처가 아물어버리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 안의 공허를 채우는 아주 작은 순간들이 쌓이는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흐르는 음악 한 곡, 혼자 마시는 커피 한 잔,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 길 위에서 만나는 익숙한 바람.
시간이 지나고, 문득 깨닫게 된다. 이별로 무너진 자리에, 어쩌면 새로운 내가 피어나고 있음을. 흉터처럼 남은 자리에서도, 결국 꽃은 피어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