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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개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

by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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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언제나 나는 무언가를 연기하고 있었다. 배우로 무대에 섰을 때, 나는 내가 아닌 인물을 살았다. 카페를 운영할 때는 손님들이 원하는 따뜻함을 연기했다. 그리고 지금, 마케터로서 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 단어들을 짓는다. 하지만 모든 순간 속에서, 내가 진짜로 살고 있다고 느낀 건 이야기를 할 때였다.


처음 무대에 섰던 날을 기억한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조명을 마주했을 때, 내 안의 세계가 한순간에 뒤집히는 것 같았다. 관객들의 시선이 내 안으로 파고들었고, 나는 그 시선 속에서 부유했다. 대사 한 줄, 손끝의 작은 떨림 하나에도 생명이 깃드는 것을 느꼈다. 그 감각은 강렬했고, 치열했으며, 나를 집어삼킬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나는 다시 허공에 떠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나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를 열었다. 커피가 내려지는 소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의 얼굴, 익숙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 그곳에서 나는 온전한 내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한다는 건 매일의 연극과 같았다. 손님들에게 가장 편안한 공간을 내어주기 위해, 나는 늘 밝고 따뜻한 주인을 연기해야 했다. 커피 한 잔이 위로가 되고, 작은 대화가 하루를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무리 완벽한 공간을 만들어도, 내 안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았다. 밤늦게 텅 빈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하루 동안 마주한 얼굴들, 스쳐 간 대화들, 사라져간 시간들을 이야기로 붙잡고 싶었다. 그렇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내 안에 고여 있던 것들이 문장이 되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나는, 결국,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지금은 마케터로 일한다.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내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나를 위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 스쳐 지나간 감정들, 내가 애써 외면했던 것들을 글로 불러내고 싶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닿아, 아주 작은 울림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는다.


배우였던 나도, 카페를 운영하던 나도, 마케터로 살아가는 나도, 결국 한 문장으로 수렴된다. 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문장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단어로 나를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 이야기들이 나를 완성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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