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는 지워지지 않지만, 그 위에 시간이 쌓이면 결이 달라진다
「스물일곱 번째 정오」
창문을 닫지 않았다. 누군가 그렇게 하면 밤새 바람이 집 안을 헤집고 다닐 거라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불청객 같은 바람이 싫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 다녀갔다는 흔적이라도 남길 것 같아서. 그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엔, 여전히 고요와 공허가 남았다.
상처라는 건, 상처 입은 사람이 아닌 다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어떤 말도, 어떤 위로도 그 피부 밑을 완전히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나만 알고, 나만 느끼는 통증. 그게 상처다. 지워지지 않고, 희미해지지도 않으며, 그냥 조용히 몸 안 어딘가에서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상처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들여다보기로 했다. 마치 오래된 나무의 옹이나 돌의 금처럼, 그 결을 따라가 보았다. 그 상처가 생긴 날의 온도, 냄새, 목소리까지. 모든 것이 나를 멈춰 세웠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긴 시간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흘러간 시간은 멈춘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햇살이 달라지고, 거리에 흐르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분주해질 때쯤, 나는 아주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두 발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숨을 고르는 일이었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견디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상처는 내 안에 있다.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아프게 찌르지 않는다. 대신 그 결을 따라 내 삶이 자라났다. 나는 더 조심스럽고, 더 단단하게, 때론 더 다정하게 누군가를 대하게 되었다.
한 번 크게 무너졌던 사람은, 다른 이의 균열을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끝이 흔들릴 때, 눈빛이 스치듯 어두워질 때, 나는 그 결을 알아본다. 그리고 말없이 곁에 남아 있는다. 그것이 내가 배운 회복의 방식이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위로 시간이 흐르면, 그 결이 달라진다. 아픔은 그대로인데, 그 아픔을 끌어안는 나의 방식이 달라진다. 삶은 그렇게, 여전히 계속된다.
"요즘은 좀 어때요?" 누군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어요. 그럭저럭, 아주 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