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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새어 나오는 틈

매일이 무너지는 것 같다가도, 어딘가에 조용히 피어나는 온기들에 기대어

by 온기

「스물여덟 번째 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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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무너지는 것 같다가도, 어딘가에 조용히 피어나는 온기들에 기대 살아간다

어떤 날은, 버스 창가에 기대어 졸다 깨어보면, 햇빛이 무릎 위에 가만히 내려앉아 있다. 그 조용한 따뜻함이, 내 하루를 다 덮어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손에 쥐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 순간만은 괜찮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들 무너지고 있다. 조금씩, 또는 아주 많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내일은 또 어떤 모양일지 알 수 없다. 누군가는 출근길에 쏟아진 커피 때문에 울고, 누군가는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아무 이유 없이 멈춰 선다.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누구에게도 말 못할 작은 상처들을 품고 하루를 버텨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살아낸다.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주는 핫팩 하나에 마음이 녹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창밖이 맑으면, 오늘은 좀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동네 풍경, 지나치던 고양이의 유난히 맑은 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옛 노래 한 곡이 말없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오늘도 그런 하루였다. 출근길에 이어폰 줄이 엉켜 시간을 허비했고, 회사에서는 아무도 내 기분을 묻지 않았으며, 집에 돌아와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아무것도 없어 허탈했지만. 그럼에도 문득, 멀리서 웃으며 걸어오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고, 문자 한 줄이 도착했다. "잘 지내지? 괜찮아?"


그 말 하나에 숨이 트였다. 괜찮다고, 오늘도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다는 사실, 내 안에 남은 누군가의 따뜻함이 오늘을 조금은 견디게 해주었다.


삶이란, 그렇게 조금씩 새어 나오는 빛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눈에 잘 띄지 않고, 때로는 잊히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있다. 우리를 조용히 감싸주는 온기. 그걸 발견한 날에는, 아무리 버거운 하루였더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오늘도 살아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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