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오스트리아 비엔나
"너의 전남자친구에게 주먹을 날리러."
순간 우리 다섯은 이 말을 듣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기 바빴다. 내가 들은 게 실환가 싶어서. 왜냐고 물으니 널 마음 아프게 해서란다.
예?
내 마음은 별로 아프진 않았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B가 말했다.
"얘가 네가 좋대."
정말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그러더니 그 남자애는 친구의 고백에 고삐가 풀렸는지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내 친구는 그 와중에 웃으면서 놀리고 있었다. ^^
나는 그 남자애에게 짧은 영어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 미안하다고.
근데 너 이름은 뭐니?
그 남자가 말한 이름은 너무 생소한 이름이었고, 내 친구는 거짓말을 치려면 좀 그럴듯하게 치라고 웃었다. 근데 남자가 알려준 인스타그램을 들어가 보니 진짜였다.
나는 계속 다가오는 그 남자에게 더 열심히 거절하기 시작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뭘 그렇게 미안해하면서 거절했는지. (ㅋㅋㅋ)
아무튼 오늘 밤 같이 있자는 남자에게(경악) 나는 그러기 싫다고 하고, 걔는 나한테 네가 후회할 거다 하고, 이 알 수 없는 대화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다른 친구들이 얘는 집에 가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그 애는 자신의 누나가 자꾸 가자고 보채자 일단 SNS로 연락하겠다고 했다. 괜히 아이디를 알려줬나 싶어서 얼른 가라고 인사하는데 그 와중에 장난스러운 B가 담배를 피우며 나에게 다가와 굿바이 인사를 했다.
문제는, 굿바이 인사를 하며 갑자기 내가 쓰고 있는 베레모에 굿바이 뽀뽀를 했는데; 그 친구가 들고 있던 담뱃재가 내 모자에 떨어지며 불이 붙었다.
나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뭐여 왜이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 서있는 친구, 일행들과 옆에 사람들이 다 같이 내 머리를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모두가 나에게 달려들어 내 머리를 북처럼 두드려댔다. 머리에 불을 지고 있는 사람마냥 불이 붙은 거였다. 나는 더 이상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집에 너무 가고 싶었을 뿐. 여자 남자 할 거 없이 굿바이 인사를 왜 다 내 이마에 하는지 당최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그래 잘 가... 할 뿐이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유교걸은 이 모든 사태에 기가 충분히 빨렸고, 친구와 나는 한국인 친구들과 다음 날 점심 약속과 일련의 SNS 교환을 마치고 숙소로 빠르게 들어갔다.
다음 날 눈뜨고 보니 어제 그 남자애에게 연락이 많이 와있었다. 내용인즉 여행 마지막 날이니 꼭 보자는 말이었고, 나는 내 친구와 가야 할 일정이 있다며 거절했다. 그 애는 나한테 마지막까지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냥 이쯤에서 후회하는 게 더 낫겠단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인스타그램을 닫았다. 잘생겼지만 군인이었던 그 남자... 안녕.
나랑 친구는 내가 한국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를 알았다며 유럽에서 인기 만점이라고 깔깔대다 잠에 들었고 그렇게 새해를 맞이했다. 어제 기운을 다 쓰고 맞이한 새해라 그런지 배가 너무 고팠다. 위장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서둘러 1층 공용 식당으로 내려왔다. 무언갈 사 먹으러 갈 힘도, 요리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내가 선택한 건 컵떡국이었다.
물이 끓을 때까지 기다리다 너무 허기져서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더니 지나가던 외국인 언니가 황급히 와서 나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냐며 왜 그러냐는 언니에게 배가 고파서 그런다고 했더니 오 마이갓. 하더라.
친구와 나는 중학생 때 항상 지각을 같이해서 지각메이트라고 불렀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비엔나까지 왔으니 발레 공연을 보자고 추위에 덜덜 떨며 줄까지 서놓고 쉬는 시간에 사진 찍느라 지각해서 위층 지각자들의 공간에 앉아있었다.
근데 사실 우리 자리가 낮은 가격의 입석, 그중에서도 오른쪽 끝이라 무대가 거의 안 보였는데 여기가 더 잘 보여서 그냥 여기 계속 앉아있었다 ^^..럭키비키잖아?
그래서 커튼콜.... 만 들어가서 직접 본 우리. 하하. 그래도 뭔가 가족들과 옷을 갖춰 입고 와서 발레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니, 부러웠다. 가족들과 함께 특별한 날을 즐기는 느낌?
나중엔 꼭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지!
젊으니까 어쩌면 가능했던 발레 입석 도전기는 이렇게 어영부영 끝났다. 발레 공연을 보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야 할 것만 같은데, 우린 버거킹으로 향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돌아가는 길이 어찌나 춥고 바람이 강한지 목도리를 머리까지 꽁꽁 싸매고 걸어갔더랬다. 근데 우린 왜 그렇게 즐거웠을까? 지금이라면 피곤하니 택시 타자. 할 텐데 그땐 자연스럽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걸어가면서 낄낄댔던 그때가 문득문득 그립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와 비슷한 시야로 지구 반대편에서 우박도 맞고, 낯선 문화를 경험하며 여행한 그 시간은 정말 두고두고 감사히 간직할 추억인 것 같다. 사람은 추억을 야금야금 꺼내먹으며 살아간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오스트리아도 나의 일용한 삶의 에너지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