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오스트리아 비엔나
나는 새해를 외국에서 맞이하는 거에 집착한다. 왜냐면 점점 한 살씩 나이 먹는 게 너무 뼈아프게 느껴지는데 각국의 랜드마크 앞에서 전 세계의 외국인들이 모여 해피뉴이어-인사를 나누다 보면 '아이고, 맞아. 나 혼자 나이 먹는 게 아니고나.' 하고 위안을 받기 때문이다. 조금 이상한 듯 하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있다. 헤헤
아무튼 유럽에 갔을 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하게 된 때였을 거다.
한국과 시차 차이가 많이 나는 나라는 내가 살아온 문화와 극명하게 달랐다. 기껏해야 일본 정도 다녀봤던 나에게는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다들 키는 어찌나 그렇게 크던지. 잘생기고 예쁜 모델들은 화보 사진 안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모두 인사를 했고 처음엔 뚝딱이며 어색해했지만 나도 곧 눈인사와 짧은 인사말에 익숙해졌다. 이건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과 인사하는 게 대체 뭐? 싶을 수도 있는데. 인사를 하다 보면, 길에서 만나는 이들에 대한 경계심이 점차 옅어지고 나조차도 여유를 가지게 된달까.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해의 마지막 밤. 12월 31일 저녁으로 우린 립스테이크와 통마늘 구이로 포식하고, 비엔나 시청에서 열리는 새해 카운트 다운에 참가하기로 했다.
일찍이 시청에 가니 사람들은 삼삼오오 맥주도 마시고 먼저 시작된 공연을 즐기며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노래들은 전부 포크송이나 알 수 없는 외국 노래만 나왔지만 시청 앞 광장에 모여있는 사람들과 우린 모두 흥겨웠다.
여기서 나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호주에서 오셨고 한국 화성에서 일을 했었다는 할아버지도 만났다.
아무튼 실제로 친구와 둘이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정말 많은 남자들의 대시를 받는데, 사실 동양인 여자에 대한 유럽 남자들의 옐로피버(Yellow fever)는 실제로도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기에 굉장히 예민한 상태였다.
이 날에 광장은 각국의 청년들도 다 모여있어서 더 했다. 심지어 대각선 앞쪽에 혼자 서있던 남자가 자꾸 눈만 마주치면 윙크하길래 혹시나 지갑 뺏길까 두려워서 친구랑 크로스백을 목까지 끌어당겼는데, 웬열, 점차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 진땀 빼며 슬금슬금 도망가기도 했다.
기차에서 만난 동갑내기 한국인 여자애까지 여자 셋이 모여 수많은 인파 속에서 카운트 다운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화려한 불꽃놀이 아래에서 우리는 양 옆의 사람들을 안아주며 해피뉴이어를 외쳐댔다. 그리고 또!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노래는 역시나 포크송 같은 노래였다. 우리 셋은 노래가 흥이 안 난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 있었는데 그때 딱 타이밍 좋게 우리 뒤에서 정확한 한국어가 들렸다.
"노래 진짜 구리다."
마음속 소리가 귀에 꽂히자 셋은 동시에 뒤를 돌아봤고 뒤에는 한국인 여자애 둘이 서있었다.
눈 마주치자마자 다 같이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인사를 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 다섯은 전부 동갑이었다! 서로 엄청 신기해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만나게 된 친구가 아까 오는 길에 봤는데 입구 쪽 야외공연장 노래가 더 신나고 좋았다며 거기로 가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모두 좋아 이 밤을 불태워보자!라는 야심 찬 다짐을 하면서 그곳으로 갔는데, 거긴 완전 핫플레이스가 따로 없었다. 전문 DJ가 쿵짝쿵짝 힙한 노래를 틀어주고 있었고, 젊은 청년들은 모두 삼삼오오 맥주를 한 손에 들고 춤을 추며 떠들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클럽조차 가본 적이 없는 나는 낯선 풍경에 흠뻑 빠져들었다.
삼삼오오 춤을 추던 무리는 점차 합쳐지더니 곧 하나의 큰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다. 우리는 가장자리에 서서 수다를 떨다가 얼떨결에 원에 합세하게 되었다. 강강술래 정도나 하겠지 했던 나의 작디작은 편협한 사고는 춤 대결 앞에 어쩔 줄 몰라했다.
특히, 어떤 멋진 외국인 언니가 뜬금없이 나를 끌고 가운데로 나가 춤을 출 땐 유체이탈을 하는 기분이었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깨어나 (난 별명이 막대기일 정도로 춤을 못 춘다.) 삐그덕 거리며 몸을 흔들었다. 언니와 지켜보던 군중들은 감사하게도 박수를 쳐줬다. 정말 뿌듯했다.
이윽고 다시 삼삼오오 무리로 갈라졌고 대신 다들 이쪽저쪽 이야기를 껴가며 친해지고 있을 때였다.
저쪽에서 나와 계속 눈이 마주치던 남자애가 친구와 다가왔다. 우리는 그 애들과 통성명을 했고 그 친구들은 세르비아에서 왔다고 했다. 눈이 마주치던 남자애는 A라고 하고, 그의 친구는 B라고 하자, A는 수줍은지 인자한 미소만 띤 채 우리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고 쾌활한 B는 우리에게 갖가지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나는 그에 걸맞게 친구와 저녁으로 먹은 통마늘 냄새를 풍기며 아직 식지 않은 댄스의 열기를 스리슬쩍 내뿜고 있었다.
세르비아에서 온 그 친구들은 노스코리아(북한)는 알지만 사우스코리아(한국)는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김정은이 유명하긴 하다며 웃었고, 나도 세르비아는 처음 들어본다고 말했다. 솔직히 그 둘이 말하는 영어 억양이 알아듣기 어려워서 몇 번이고 천천히 반복해서 들은 뒤 우리 다섯은 머리를 모은 채 단어를 유추해야만 했다.
날 빤히 바라보던 A가 은은하게 웃으며 자꾸 나에게만 말을 걸길래(명시해 두지만,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내가 학창 시절 만난 남자친구와 매우 닮았다고 말을 해주었다. 내 전남자친구는 매우 이국적으로 생겼었어서 친구도 인정했다.
그러자 그 남자애가 갑자기 정색하더니 한 마디 했다.
"그래? 그럼 나 한국 가야겠다."
뜬금없는 소리에 내가 왜냐고 묻자, 그 남자애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의 전남자친구에게 주먹을 날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