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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Nov 18. 2024

우리집 가이드직을 내려놓겠어요(2)

여섯 번째, 대만 타이베이

  대만을 처음 방문했을 때, 사촌동생과 함께 갔다. 우리 가족은 친척들과 매우 가깝게 지내는 편이라 친척 동생들이 평소에도 저녁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와 저녁을 먹고 간다든지하는 일들이 자연스럽다. 이때 내 남동생은 군대를 갔고 이 친구는 군대를 가기 전 여행을 가보고 싶다는 말에 나와 함께하게 되었다. 

 나에게 너무 좋은 여행 선생님이었던 사촌 언니처럼, 그런 누나가 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하하


 나와 동생은 당시 대만에서 꽤나 유명한 호스텔 중 두 곳에 머물렀는데, 당연히 나는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남녀 혼숙을 골랐다.

 

 물론 나는 남녀혼숙이 처음이었다. 항상 여행하면 여성전용 게스트하우스에 묵었었으니까.

 문제는 우리가 일정을 끝나고 돌아온 그날이었다. 동생은 1층 공용공간에서 맥주를 마시며 혼자 게임을 더 하다가 오겠다했고 나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숙소에 먼저 올라가 쉬고 있었다. 나는 불현듯, 갑자기, 하필, 맥주가 당겼고. 2층 침대 중 아래층에 있던 터라 아무 생각 없이 커튼을 열었다. 그리고 난 그대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내 침대 바로 앞엔 상반신 탈의를 한 빡빡머리 남자가 누워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도 겁이 너무 많긴 한데, 여행 초보자였던 나에게 이런 상황은 정말 감당하기 어려웠다. (ㅋㅋ)

 이 분은 주무시고 계셨고.... 우리 방은 6명 정도 묵는 공간이었는데 흘깃 보니 아직 이른 초저녁이라 방에는 나와 이분만 있는 듯했다.

 나는 쿵쾅대는 심장과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동생에게 당장 방으로 와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도저히 바로 앞에 있는 이 분을 넘어서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 분이 나쁜 의도 없이 누워있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도 그랬다.) 나는 온갖 두려움에 사로잡혀 별별 상상을 다하며 동생에게 문자 폭탄 중이었다.

 동생은 처음엔 상황 파악이 안 되니 누나 그냥 나오라며 귀찮아했지만, 조용히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니 바로 올라왔다.

 


 하지만 동생도 무섭다고 깨우지도 못하길래 둘이 어쩌지 고민하다 프런트에 가서 직원에게 영어와 파파고를 섞어 쓰며 설명하니, 직원이 바로 우리를 데리고 방으로 갔다.


 사실 이때까지도 직원이 100프로 상황을 이해한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러다 방문을 열고 저 사람이 저기에 누워있으니 갑자기 황당해하면서 막 화를 냈다. 우리는 혹시.... 우리가 일렀다고 해코지할까 봐 쫄보처럼 저기 멀찍이 서서 지켜봤다.

 

 누워서 뭐라 뭐라 대화하던 사람은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가서 누웠다. 직원은 방에서 나오더니 저 사람 말로는 너무 더워서 저러고 자고 있었다고 하더라-라고 말을 전해주었다. 그리곤 너무 놀랬겠다며 지금 위층 여성전용방에 자리가 있는데 바꿔줄까? 물어보기에 그러겠다고 답했다. 동생도 어차피 숙소는 혼자 있어도 괜찮다길래 냉큼 대답했었더랬다.


그땐 아찔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고 어이없었어.... 왜 거기서 그러구 주무시는 건데요..


 외가 사촌들과 다 같이 왔을 땐 야시장을 제대로 누볐었다. 특히 나는 야시장에서 고구마볼에 푹 빠져 봉지를 품에 안고 돌아다녔다. 

 한참을 누빈 후 길거리에 풍기는 취두부 냄새에도 점차 익숙해졌을 무렵. 우리들 중 제일 큰 오빠가 말했다. 과일이 먹고 싶었다고.

 생각보다 야시장에서 과일이 안 보여서 여기저기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리어카에 잔뜩 과일을 지고 파시는 분을 찾았다. 

 우리는 팀을 나눠 갖가지 먹을거리를 사서 다시 모이기로 했고 큰오빠는 혼자 과일을 사 오기로 했다. 큰오빠가 한참 동안이나 오질 않아서 웅성거리는 순간 누군가 저기 오빠 있다!라고 외쳤고 우리가 돌아봤더니 오빠가 멍하니 리어카를 사람들이랑 따라다니고 있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ㅋㅋㅋ)

 리어카 아저씨는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아마도 시간마다 옮겨 다니시는가 본데, 오빠말로는 과일을 달라고 하는데도 갑자기 두 분이서 묵묵히 짐을 싸곤 리어카를 끄셨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분을 부르면서 따라가자 오빠도 따라갔다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오빠의 모습을 한참 따라 하며 낄낄댔다. 

 대만은 가족들과만 다녀왔는데, 하루종일 이렇게 편하게 깔깔 웃던 기억뿐이라 언젠가 누군가 가족여행을 고민한다면 잔뜩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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