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선물, 80평 쓰레기집 (5)

이웃들과 진심이 통할 때

by 옹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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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청소를 며칠 앞두고, 점심시간을 아껴 홍삼 판매점에 갔습니다. 상당한 사비를 들여 홍삼을 바리바리 샀어요. 그리고 편지를 하나하나 썼습니다. 다음을 위해서였죠.


1. 민원에 대비하기 위함
2. 그간의 괴로움에 사죄드리기 위함


이 쓰레기집은 다른 문제를 또 하나 안고 있었습니다. 오래도록 케케묵은 문제였는데요. 짧게, 사적인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보통 쓰레기집은 이웃들의 민원에 의해 지자체에 신고될 때가 많습니다. 두꺼운 시멘트벽을 두고 떨어진 이웃집에서도 괴로움을 참다못해 도움을 구하는 거죠.


그 정도로 쓰레기집은 이웃들에게 악취나 벌레 등 위생면에서 폐를 끼치고, 쌓이다 못해 터져 나온 물건들이 건물 공용부나 도로까지 차지해서 모두의 통행과 안전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잦습니다. 이 쓰레기집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출처: freepik


다만 이 집은 조금 양상이 달랐습니다. 물론, 위층 분들이 쓰레기집에서 이따금 심한 악취가 난다고 강하게 항의할 때가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빌라의 세대 중 하나인 이 1층 쓰레기집은 마당에 둘러싸여 있었고, 지하에도 함께 쓰는 공용주차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단으로 온갖 물건을 쌓아두기 시작하신 거죠.



심지어 아버지가 1층 근처 마당의 조경도 관리하지 못하게 하시는 바람에, 마당은 약 30년간 이상한 폐기물이 쌓인 아마존 우림이 되어있었습니다.


창문이 보이지 않는 쓰레기집.


그리고, 거대하게 자란 담쟁이덩굴이 목질화로 갈색 '나무'가 되어 3층까지 타고 올라가고 있었어요. 이미 담쟁이가 있는 1층 방 한쪽 창문에는 방충망을 뚫고 담쟁이가 유리를 넘보는 모양새였습니다.


방충망을 뚫고 들어온 담쟁이 덩쿨. 아니, 나무.


가까스로 들어간 마당 안쪽에는, 무섭도록 퍼져나가는 대나무로 엉망진창이었고요. 대나무는 명확하게 화분으로 범위를 그어주지 않으면 매서운 생장력으로 인근 토지를 다 잠식해 버리는 수종입니다. (유의!)


카더라에 따르면,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시골집 거실 한가운데에 죽순이 솟아있었다는 얘기도 있죠.




이 집이 아직 쓰레기로 뒤덮이기 전에도, 자주 튀어나오던 아버지의 저장강박과 엄포로 여기서 살던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0년간 밖까지 흘러나온 괴로움을 같이 이고 지고 살았던 이웃들은 오죽했을까요.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마지막엔 매일 같이 전화해서
정말 괴로웠어.

민사소송을 건다만다
얘기도 오갔고.

돌아가실 즈음 상태가 위급해지셨을 때, 몇 번 이 쓰레기집을 오가던 형제분들께 이웃들이 호소를 했나 봅니다.


이렇게 이웃들이 사는 곳에서 무언가 소음, 악취가 발생하는 현장 업무를 하게 되면 가장 골치 아픈 것이 '민원'이지요. 30년간 묵은 민원은 그 무게가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쏟아지게 될 민원을 오롯이 받는 것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앞이 좀 깜깜했지만 편지에 핸드폰 번호를 적어두었어요.


...
이 집은 저희 어머니의 소유입니다만,
그동안 여러 가지 가정사로 인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
오래도록 고생하셨을 이웃분들께
대신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이곳은 저에게도 어릴 적 추억이 있던 곳입니다.

푸릇하고 아름다웠던 이 집을
책임지고 끝까지 잘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퇴근길, 편지와 선물을 이고 지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저녁 즈음이면 많은 이웃분들이 퇴근하셔서 직접 뵐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쓰레기집으로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뺨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날카로운 말과 함께 민사소송 대비하라는 얘기도 나올 법 했죠. 크게 한번 숨을 몰아쉬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맞은 호수의 초인종을 눌렀어요.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XXX호 소유주 딸 OOO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특수청소 등이 예정되어 있어
직접 찾아뵙고 안내드리고자 해요.

잠시 시간 내어주실 수 있으실까요?



출처: freepik


조금 있자 문이 빼꼼 열렸습니다. 처음 뵙는 분들이 쭈뼛쭈뼛 나오셔서 앞으로의 계획을 자세히 설명드렸고, 선물과 편지를 받아가셨습니다.


원래 이 집엔 이 빌라를 지었던 대표님 내외분들이 살고 계셨습니다. 이 분들도 모두 세상을 떠나셨던 것으로 언젠가 전해들었습니다. 시간이 참 속절없이 빠릅니다. 기분이 이상했어요.




그렇게 짐을 바리바리 정리하던 중, 또 한 할아버님이 지나가십니다. 황급히 인사를 드리며 다가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저 XXX호 소유주 딸 OOO입니다.

혹시 몇 호실까요?

엥? 네가 OOO라고?
나야, XXX호.

세상에, 네가 이렇게 컸다고?
이렇게 정말 오랜만이다!


저는 기억이 희미한데 정작 더 반갑게 맞아주시는 할아버님이셨습니다. 이런 저런 말씀을 해주십니다. 저희 어머니도 기억하고 계시네요.




2층의 할머님도 복도에서 나는 대화소리를 들으셨는지, 이내 문을 열고 내려와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어머, OO아! 내가 편지를 읽다가
눈물이 고여서 너 아직 있나 내려와봤어.
선물은 또 무슨 일이니 괜찮은데.

아버님께서 그렇게 되셨구나.
우리집 양반도 지금 입원해있어.
...

아참, 우리집은 집을 손 보면서
벽난로를 막아버렸어.
리모델링할 때 참고해.

그리고 바깥에 그 알지?
아버지 쌓아두신 것들 난리도 아냐.

꼭 부탁해. 화이팅이다 얘!


민사소송 대신 격려를 한 사바리 받아든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요긴한 정보들도 얻었구요.


편지가 조금은 마음을 녹였던 걸까요. 남은 프로젝트를 잘 헤쳐나가며, 모두의 체증을 다 해소시켜야겠다고 재차 다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처음 뵙는 현재 동대표 분도 만나뵐 뵐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관리비가 어떻게 정산되어 왔고,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들은 뒤 아버지, 그리고 쓰레기집과 관련된 자세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나저나 아버님께서 점유하신
주차장 공간이 원래
저희 차량 위치라고 하더라구요.

지하주차장의 한 부분.
지하주차장. 철거해야 할 앞면. 저 안에는 또 무언가 잔뜩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희가 어쩔 수 없이 6년간
차를 정화조 앞에 임시주차했는데,
그, 아시죠. 냄새가 쉽지 않아서...

부탁 드립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사실 아직 상속분도
다 정리되지 못한 상황이라,
자금이 마련되는 대로
전문업체 통해 진행하도록 할게요!

청소와 철거가 끝나면
아마 조경과 리모델링도 해야할 것 같아요.

출처: freepik


저희 집 때문에 30년간
2호 라인 조경도 엉망이 되었더라구요.

공용부지만, 다른 분들도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긴 기간 동안 사람도 많이 다니고,
소음도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 모두 뵙지 못한 이웃분들도 계신데,
바쁘시겠지만 안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가 감사하죠.
모두들 응원하고 이해해주실 거예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며칠 뒤, 특수청소의 이튿날. 이웃분들께서 마음을 전해주셨습니다. 제가 더 큰 선물을 받은 셈인데요.


늦었지만 조문을 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씀의 편지와, 조금이라도 원활한 청소와 공사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마음이라며 비용을 보태주셨습니다. 상큼한 주스도 함께요.


이웃분들의 마음이 담긴 선물들.


저는 울고싶어도 울음이 잘 나오지 않는 편입니다만, 사실 많이 버거웠거든요. 시간도, 비용도, 감정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이 쓰레기집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이 날만큼은 조금 시원하게 훌쩍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아버지가 하고 싶던 숙제를 모두 제게 남겨주고 가신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금 글을 쓰면서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쓰레기집 특수청소. 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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