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선물, 80평 쓰레기집 (4)

지인들의 보물찾기 (feat. 각종 공구, 테이블웨어)

by 옹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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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로 특수청소 일정이 확정되었습니다! 당시 장마 예보가 6월 중순 즈음부터라고 소식이 돌 던 때라 한숨 돌렸어요.


회사에서도 상황을 잘 알고 배려해주신 덕분에,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고자 주말부터 일정을 잡고 주초에 연차를 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물품이 걱정됐어요.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와주시겠다고 선뜻 나서준 분들이 계셔서 특수 청소 전에 쓰레기집에 방문했습니다. 최대한 우리가 판매하거나, 지인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물품들을 미리 꺼내보자는 취지였죠.




그리하여 쓰레기집을 습격할 어벤져스(?)가 결성되었습니다. 각자의 R&R도 명확하게 나누었고, 심지어 당일 지인분 덕에 새롭게 알게되신 분이 추가로 트럭을 끌고 방문해주셨습니다. 다양한 골동품을 좋아하시는 공예 교수님이셨어요.


1. 남편 - 테이블웨어 구출 담당
2. 친구 A - 공구 구출 담당
3. 친구 B - 설치 미술용 비품 구출 담당
4. 교수님 - 각종 공구, 가구, 가전 등 구출 담당




1. 남편의 업적


열심히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남편과 친구 A


F&B를 사랑하는 남편은, 제가 니퍼로 뜯어낸 장식장을 비롯해서 다양한 테이블 웨어를 구출해냈습니다. 대부분 제가 어릴 때 어머니와 함께 쓰거나, 장식품으로 갖고 싶어 어머니를 졸라 받았던 선물들이었어요.


쓰레기집을 나올 때, 이 테이블웨어들을 도망치듯 놓고 왔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씁쓸했습니다. 그래도 대부분 구출하여 남편 카페의 멋드러진 장식을 맡게 되었어요. 그 중 일부를 보여드립니다.


부엌에 두고 썼던 양념통. ART WERK사의 키친웨어.


어릴적 경복궁의 박물관에서 칠보 공예를 보고 한눈에 반해 어머니를 졸라 샀던 칠보 장식품.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90년대의 키치한 주전자와 평양 작가의 청자 작품


마지막 청자 작품이 좀 재밌습니다. 남편이 처음에 안쪽에서 보증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도대체 평양 작가의 작품이
왜 여기 있지?


어머니께 전화하여 물어보니, 한동안 90년대에 세종문화회관 등 서울에서도 평양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해요. 그때 가져온 작품이라고 합니다.




2. 친구 A의 업적


친구 A는 대단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전기차 충전기 설치 업무를 하고 있는 이 친구는 공구의 달인이었어요.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공구도 보면 딱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워낙 공구꾸러기셨던 터라, 여기저기서 공구 박스가 열댓 개는 쌓여서 골치였는데 친구 A에게는 공구가 모두 공짜 선물이었던 셈이죠. 저는 미리 폐기물을 처리하고, 친구 A는 업무에 쓸 공구를 확보하고! 최고의 win-win이었습니다.


재밌는 공구가 있어서 하나 찍어봤습니다. 두꺼운 전선을 압착할 때(?) 쓰는 공구로, 정말 전기 공사 현장에서나 쓰는 것이라고 하네요. 이에 도대체 쓰레기집에 왜 있었는지, 아흔 되시는 아버지는 어디에 쓰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친구 A가 기뻐하니 너무나 맘이 좋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기 압착 공구. 신기합니다.


이 친구의 두번째 업적이 있습니다. 각 방을 돌아다니던 중, 각종 촬영기기가 몰려있는 방을 발견했어요. 너무나 많이 짐이 쌓여 진입할 수 없는 안쪽에는, 또 각종 붙박이 장과 수납장이 시건 장치들로 꽁꽁 묶여 있었죠.


저 수납공간 안쪽에도
분명 촬영기기가 잔뜩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저 쇠사슬을 자르지?

남편과 저는 그 방에서 붙박이장 손잡이에 꽁꽁 묶인 쇠사슬을 보며 한숨을 쉬었습니다. 주변에서 발견되는 각종 공구들로 잘려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죠. 쇠지렛대(일명 빠루)로 다 때려 부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이거 그냥 손잡이에 있는
(+)나사 풀면 되겠는데요?

이 손쉬운 생각을 못 하다니!!! 당장 드라이버를 가져와 손잡이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는 어마무시한 양의 촬영기기가 발견되었죠.


안에 어떤 것들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보이는 촬영기기용 하드케이스만 어떻게 정리해도 최소한의 자금은 보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붙박이장에서 발견된 촬영기기들


하지만 양이 너무 많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멀리도 사는 친구 A가 주말에 또 시간을 내어 커다란 작업차량을 끌고 와준답니다.


남편과 친구 B분은 카페 공간 일부를 정리하여, 촬영기기들이 팔릴 때까지 보관할 수 있도록 힘을 써주기로 했어요.


어벤져스들이 없었다면 이 물품들은 다시는 세상 밖을 보지 못 했을 테고, 저는 최소 백 만원은 더 썼을 겁니다.




3. 친구 B와 교수님의 업적


친구 B님은 순수예술을 하는 멋진 분입니다. 이날 여러 가지 영감을 받고, 또 정리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셔서 함께 모셨어요. 그런데 물품을 살펴보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아버지와 비슷한 취향을 갖고 계시다는 교수님을 모셔와주셨습니다.


공예를 하시는 분들이 또 각종 공구와 도구의 달인이시죠. 저희 아버지만큼이나 다양한 골동품과 오디오, 기기 등이 작업실에 가득하시다는 교수님께서 서울 밖에 계시다가 트럭을 몰고 멀리까지 달려와주셨습니다.



교수님, 이 더운날
멀리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처음 뵙는데 이런 누추한 곳에 모시니
죄송한 마음입니다.

아니에요.
내 작업실 와 보면 깜짝 놀랄 걸?
나도 만만찮아.

이렇게 호언장담하시던 교수님은 다행이도(?) 저희 쓰레기집을 정말 즐거워 해주셨습니다.


세상에! 이게 있다고?
이거 그건데! 나무 자르는 거.
와, 여기도. 여기도. 와.


교수님은 정말이지 전우치처럼 물건 위를 밟고, 날아다니며, 접근할 엄두를 못 내던 공구와 가구 등을 눈 깜짝할 사이에 빼내셨습니다.


상상이 되실까요? 누구는 그릇을 덜그럭덜그럭, 누구는 공구를 바리바리 챙기며 행복해하고, 누구는 아버지의 서적과 연구자료를 살피며 아버지의 마지막을 저만큼 슬퍼해주는 그 사이를, 처음 뵙는 교수님이 뛰어다니며 물건을 해체하고, 뜯고, 밖으로 빼내셨어요.


이건 무거운 거 들어올리는 거야.
이게 어떻게 여깄지?

찾아보니 '호이스트'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공구꾸러기인 만큼 개조왕이기도 하셨는데요. 어디서 가져온 파레트와 의자, 철근, 호이스트 등을 엮어 무겁고 높은 의자를 만들어두신 게 있었어요. 그리고 그 의자는 다시 앙카를 박아, 양쪽 시멘트 벽에 고정시켜두셨구요.


(출처: 구글 이미지)


아버지는 그 의자에 앉아서, 호이스트를 작동시켜 이런저런 물건을 편하게 집어드셨던 것 같아요. 힘이 많이 없어서 만드셨을 텐데, 지금도 아흔 넘은 아버지가 어떻게 작업하셨는지 미스터리입니다.


어쨌든 교수님 덕분에 새로운 기기 이름도 알게 되고, 특수 청소 하기 전에 트럭 하나는 짐을 덜었습니다!




이렇게 조금은 더 가볍게, 쓰레기집 특수청소 전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특수 청소 전에 이웃분들을 위해서, 사과와 양해의 인사를 돌릴 준비를 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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