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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거꾸로 배웠다 #3

마흔 넷 대학생, 다시 배움의 길로

by 이지현


전자책쓰기 강의를 하며 가르치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데, 지금처럼 계속 일해도 괜찮을까?’ 나름대로 책과 강의를 보고 스스로 공부했다. 내가 아는 선에서 강의안을 다듬어가며 사람들을 가르쳤다. 사람들을 돕는 일을 계속 하고 있었지만 ‘내가 정말 글을 알고 있을까?’하는 질문이 생겼다. 느낌적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을 이제는 정확하게 왜 그런지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면 맞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도 조금씩 크게 느끼고 있던 터였다.


어떤 문장이 좋은 문장인지, 어떤 글이 사회에서 설득력을 갖는지 그것을 이론적으로 알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글쓰기를 배운적이 없다는 불안’을 조금 내려놓고 싶었다. 나는 글을 다시 배우기로 결심했다.


다시 대학교에 입학했다.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는 ‘디지털 대학교’다. 4년제 대학교 졸업장이 있어서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었다. 디지털 대학교는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온라인상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었다. 통학이 부담스러운 나에게 온라인 수업은 좋은 선택지였다.


‘문예창작과’에 등록했다. 묘하게 설레고 긴장됐다. 오랜만에 다시 학생의 자리로 돌아가니 익숙한 듯 낯설었다. 20대 꿈 많던 시크한 대학생은 40대의 현실 감각이 철저한 아줌마 대학생이 되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두근거림이 이렇게 생생했던 적이 있을까. 한동안은 가르치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고, 나의 경험을 정리해서 나누는 일에 집중했지만, 이제 다시 ‘배우는 사람’으로 시작점에 섰다.






대학교에서는 클래식한 글쓰기 이론을 배울수 있어서 좋았다. 예를 들면, 책이나 강의에서 ‘짧은 문장으로 써라’는 내용을 보고 무작정 따라했다. 그런데 교수님은 짧은 문장도 긴 문장도 다 필요하다고 했고, 긴 문장으로 쓰인 작품을 보여줬다. 내가 고정관념으로 알고 있던 것을 반박하는 내용을 작품으로 배우는 건 신선했다. 긴 문장을 쓰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짧게 써야 하는지 이유를 알면 적재적소에 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 수필, 시, 노래가사, 보고서 등 글쓰기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가 있고, 각각의 목적과 의도에 맞게 써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글마다 특성이 다르다는 걸 이해하니 더 재미있었고,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문학작품들을 하나씩 읽어보려고 도서목록에 저장해두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문학’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실용서 위주로 읽던 나에게 교수님이 추천하는 고전과 소설, 에세이는 보물찾기와 같았다. 중고등학생 때 교과서에서 봤던 작품들을 다시 만났는데, 그때는 정답을 외우느라 바빴다면 이제는 다양한 관점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인생 경험이 쌓여서일까, 작가의 감정을 천천히 따라가는 속도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특히 에세이가 재미있다. 문학은 고리타분하고 현실 도피를 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인간 세상의 부조리함, 욕심, 꿈, 기대와 원망 같은 모든 감정과 사건을 담은 보석 같은 이야기였다. 이해가 되니까 재미있었고, 독서 편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반찬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우들과의 만남도 새로웠다. 나보다 훨씬 어린 20대 학생들도 있었고, 나보다 나이가 든 인생의 후반부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다른 이유로 각자의 속도대로 글을 배우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또 다른 세계를 엿봤다. 내가 보지 못한 풍경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관점들. 가르치는 사람으로 있을 때는 해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는 정말로 글을 '거꾸로' 배웠다. 보통 사람들은 이론을 배우고 연습을 하고 그 다음 현장에 나간다. 그런데 나는 현장에서 먼저 부딪히고, 스스로 방법을 찾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다가, 이제야 교실로 돌아왔다. 순서가 뒤바뀐 배움. 하지만 이 순서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이미 현장을 경험했기에 이론이 더 생생하게 와닿았고, 가르쳐본 경험이 있기에 배움의 가치를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날 교수님이 물었다. "왜 글을 쓰려고 하나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글을 쓰면서 살고 싶은데, 제대로 알고 싶어서요." 교수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좋은 이유입니다. 필요해서 배우는 것만큼 강력한 동기는 없으니까요."

마흔 넷의 대학생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낯설지만 반가운, 부끄럽지만 당당한, 늦었지만 딱 맞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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