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쓰는 글, 나를 알아가는 시간
보통은 글쓰기를 배우고, 익히고, 어느 정도 수준이나 인지도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막연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였다.
난생처음 전문 상담을 받았다. 진단지를 작성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동안 뭉뚱그려 두었던 문제들이 하나씩 구체적인 언어로 드러났다. 상담을 마치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지만, 어딘가에는 이 대화들을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글이라기보다 ‘기록지’였다.
상담실에서 나눈 이야기, 내 안에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다시 돌아보고 싶은 문장들을 조용히 옮겨 적었다.
이야기는 휘발되지만, 기록은 남으니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생각을 글로 붙잡는 경험을 했다.
그 글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었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도, 평가받는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솔직한 내 생각을 따라가며, 문장을 하나씩 적어나갔다. 멋진 표현이 없어도 괜찮았다.
중요한 건 ‘잘 쓰는 법’이 아니라, ‘나에게 정직해지는 법’이었다.
상담이 끝나면 마음속에 작은 여운이 남았다.
그 여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남기고 싶었고, 글을 쓰며 나는 조금씩 나를 알아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