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편도 4킬로미터, 꼬박 오십 분이 걸리는 거리를 왕복으로 걸었으니 하루 두 시간은 길 위에 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예외는 없었다. 초등학교 6년, 그 긴 시간을 결석 한 번 없이 걸어 다녔다.
매일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어느 날부턴가 지루해졌다. 그래서 나는 탐험가가 되기로 했다. 오늘은 초록 물결 넘실대는 논둑길을, 내일은 백 년 묵은 은행나무가 지키는 마을 안 길을 택했다. 우물가에 모인 아주머니의 수다 소리가 배경음악처럼 흘렀다. 경로는 매일 달랐지만, 도착지는 언제나 학교거나 집이었다.
하굣길은 이별 연습이었다. 친구들과 떠들며 걷다 보면 어느새 갈림길이 나왔다. "내일 봐!" 짧은 인사와 함께 아이들은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섭섭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 또 보기로 되어 있었으니까. 그 뒷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선명한 스틸 사진으로 남아 있다.
계절은 풍경이 아니라 몸으로 왔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한겨울에는 등을 돌려 뒷걸음질 쳤다. 칼바람을 등으로 막아내는 요령을 그때 터득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여름엔 커다란 나무 그늘에 책가방을 베고 누워 숨을 골랐다. 덥고 추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묵묵히 견디거나 잠시 쉬어가는 수밖에.
어른이 된 지금은 걷기 전에 먼저 따진다. 이 길이 맞는지, 더 빠른 길은 없는지, 굳이 걸어야 하는지. 따지고 재다 보면 정작 발을 떼지 못하는 날이 많다. 목적지에 빨리 닿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묵묵히 걷는 법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무런 의심 없이 매일 8킬로미터를 걷던 그 아이가, 어쩌면 지금 나를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묵묵히 발을 떼던 그 단순한 반복이, 알고 보니 가장 단단한 시간이었는지도.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그 시절 통학로를 떠올린다. 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 몸과 기억 속에 고스란히 새겨져, 다시 걸을 수 있다고, 묵묵히 걷다 보면 결국 집에 닿게 된다고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